(펌) 대박원장

2020. 6. 6. 15:45커뮤니티, 병원, 요양원

병원을 개업하기 전에 개업과 병원 경영에 관련된 많은 자료들을 찾았었는데, 너무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팁들 보다는 마인드셋을 다시 정비해주는 글들이 나에게는 많은 도움이 됐었습니다.

 

에버노트를 다시 읽어보다가, 당시의 나에게 큰 도움을 줬었던 출처 불명의 글을 찾아서 여기에 올립니다.

 

글쓴이를 확인하지 못하고 업로드하는 것이라, 혹시라도 추후에 문제가 있으면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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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박원장이다. 초대박은 아니라도 환자들에게는 소문이 난 '이른바 대박'이다. 그런 그가 비밀을 알려준 적이 있다. 대박의 비책이 담긴 판도라상자를 슬쩍 한번 열어 나에게 보여 준 것이다. 상자 안에는 자리 목, 인테리어, 광고, 인맥, 인물, 말주변, 약 처방……이것저것 그럴싸한 것이 들어있었는데 뚜껑을 열자 다 날라가고 마지막에 하나가 남은 것이 있었다. 만져보려던 차 내 손을 막은 그는 그것이 ‘믿음’이라 조용히 알려주었다. 남이 함부로 만지면 깨지기 쉽다는 것이다.

너무 시시하고 허망한 것이긴 하지만 그는 말한다. 환자가 어떤 의사를 찾아갈 때 이유는 단 한가지, 그가 믿을 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늘 환자에게 ‘믿음’을 주는 연구를 한다.

 

그의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서 면도를 깨끗이 하는것으로 시작한다. 면도 역시도 상대방에게 믿음을 주기 위한 시작이다. 사람의 깔끔한 외모는 상대방에게 신뢰를 준다. 꼭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머리를 단정히 한다. 피부는 흰 윤기를 지향한다. 그는 마치 은행원 같은 외모를 지향한다. 검은 얼굴에 수염은 거무수룩, 머리는 기름이있고 보풀이 진 티를 입어 밤새 글을 짜내느라 고뇌에 빠진 소설가 같은 이미지의 사람보다는 은행원 같은 사람에게 내 몸을 맞길 만하다. 비듬보다는 믿음이다.

 

외모가 사람의 믿음에 주는 영향은 어린왕자의 일화가 유명하다. 어린왕자가 살던 소행성 B612를 처음 발견한 터키의 천문학자는 거지같은 행색으로 학회에 발표를 하나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말끔한 모습으로 2년 뒤 다시 그 학회에 가서 발표 하였을 때에서야 위대한 발견으로 인정받았다. 생땍쥐베리는 ‘어린왕자’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원래 다 그런 거다’라고……’호감의 법칙’ 또한 유명하다. 잘생긴 외모의 피의자가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높으며 말끔한 외모의 피의자가 죄를 적게 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라고 한다. 신뢰 때문이다. 이렇듯 의사의 말끔한 외모가 환자의 신뢰에 주는 영향은 적지 않을 듯 하다. 실제로 주위 대박원장들은 모두 은행원 같은 차림이다.

 

그는 청진기를 십자가라 여긴다.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거룩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가 여기는 것보다도 환자들은 청진기를 더욱 거룩하게 생각한다. 제발 청진기를 한번만이라도 대주길 바란다. 그들에게 청진기는 일종의 은총이다.  병원에 오면 청진기를 대 줌으로서 진료의 완성을 경험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사실 초심을 잃어버리거나 청진기 없이 문지만으로도 진단이 될 경우 청지기는 귀찮은 방법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그는 반드시 청진기를 대주고 꼼꼼히 고민해준다. 마치 그들을 위한 거룩한 고뇌인 듯 보여준다. 건장한 젊은 남자가 한 달이 넘도록 만성적으로 몸살기만 있어 이곳저곳 다니던 환자가 왔다. 열도 없고 다른 증상도 없었다. 그저 다른 병원에서처럼 진찰할 것도 없이 근육통이라 생각하고 타이레놀에 소염제 몇 알 주어도 되는데 그는 역시 거룩한 십자가를 그의 가슴에 대어 주었다. 그리고 환자처럼 고통의 고뇌를 같이 해준다. 그의 귀에 쉭쉭 심잡음이 들린다. 환자는 감염성 심내막증으로 진단 되었다. 이유도 모르고 시름시름 앓다 죽어갈 환자에게는 기적이 일어난 샘이다. 또한 학교 다닐 때 재시란 재시는 모조리 걸려본 열등생인 그에게도 청진기 하나로 명의 칭호가 붙게 된 재수띠기를 얻게 된 순간이니 과연 십자가의 기적인 셈이다. 할말이 없으면 청진기를 대고 속으로 기도를 할 때도 있다고 한다. . 청진기란 단지 듣기 위한 거라기 보단 그들을 위해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럴싸한 ‘기적의 고뇌기’이다.

 

세상의 모든 묘약은 결국은 ‘믿음’에서 온다. 사랑의 묘약, 생명의 묘약, 기적의 묘약….모두 그들이 믿기 때문에 가능한 명약인 것이다. 名의라 하는 구당 선생의 존재도 결국 절대적인 ‘믿음’이 만들어낸 허상이듯 믿음이 만병통치약이다. 그런 믿음을 그는 교묘히 이용한다. 

   

눈 마주침, 깨끗한 병원, 친절한 직원, 약속된 진료시간, 성실, 경청, 존중, 관용….이들 모두 결국은 사람들이 그가 믿을 만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재료이다.

 

신뢰(Trust)는 독일어로 편안함(Trost)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믿는 사람의 편안함은 곧 신뢰로 이어진다. 그는 상대방이 편안하도록 그들의 예측과 기대를 벗어나지 않도록 한다. 상대방의 의견에 우선 공감을 해준다. 기대치에도 동의를 해준다. 아무리 틀린 의견이라도 일단은 긍정을 해준다. 공감은 호감을 낳고 호감은 믿음이 된다. 그래서 믿음은 얻고 난 후에 서야 틀린 점을 교정을 해준다.

 

그래도 그는 쉽게 환자들의 친구가 되거나 아들 혹은 동생이 되거나 부인이 되지는 않는다. 친구나 동생이나 아들, 부인은 그리 쉽게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직자 같은 사람이나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거나 남편이 되는 편이 낫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에게 있어 믿음의 힘에 가장 큰 원료는 자신감이다. 그런 자신감을 얻기 위해선 공부를 게으르지 않는다. 남들은 귀찮아하는 학회나 세미나를 찾아 다니며 모르는 것은 책을 찾는다. 손쉬운 사기꾼이 되기보다는 어려운 논리가가 된다. 그렇게 해서 얻은 자신감은 그의 밑천이 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남이 자기를 믿게 만드는 일이다. 하느님도 세상사람들이 당신을 믿게 만들려다 쉽지 않으니 아들인 예수님까지 보냈다. 그러고도 아직 많은 세상사람들이 그분을 믿지는 않는다. 알라도 마찬가지다. 알라를 위해 수많은 피를 흘렸음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의 인구가 믿음에 부족하다. 믿음을 다루는 것은가장 힘든 직업이다.

 

대박원장의 믿음은 선택을 제시한다. 그저 욕심 없이 편한 게 좋은 것일 뿐, 그가 권하는 것은 믿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절대적인 믿음보다는 믿어도 좋고 안 믿어도 좋지만 믿으면 부처가 될 수도 있다는 선택적 믿음을 제시하는 불교적 믿음에 가깝다. 아마 그에게도 사리 좀 생겼을까?  

 

그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자신을 믿는 연습이다. 부끄러운 자신을 스스로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라 생각하는 그는 겸손을 연습한다. 자신을 독백하는 겸손이야말로 진정한 믿음 아닐까. 그것이 사람들에게 그를 더욱 믿을 만 하다 생각하게 만들런지도 모르겠다.

 

 봄이 왔다. 분명 봄이 올 것이라 믿을 수 있었기에 사람들은 긴 겨울을 견딜 수 있었다. 나무에 매화가 열렸다. 빈가지 나목에 분명 꽃이 필 것을 믿었기에 사람들은 그를 베지 않고 놓아두었다.

 

그런 자연처럼 나도 사람들에게 믿을 만하게 되고 잡다.

 

 

청진기를 발명한 프랑스 의사 르네 라에네크. (출처: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