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26. 13:29ㆍ의료
오늘 오전 경찰이 한 수련병원에서 피켓 시위를 하는 전공의 촬영을 시도했다고 한다. 전공의에게 의료법 59조를 적용하려면, 전공의 본인에게 행정명령서가 전달된 것이 확인되어야 하고, 해당 전공의가 파업에 참여했다는 증거가 필요하니, 그 목적으로 경찰을 투입한 것 같다. 많이 분하고 안타깝지만, 고생하고 있는 전공의들과 달리 개업의들은 적극적인 휴진 투쟁 참여율이 높지는 않다.
어제 밤늦은 시간 잠정 합의문(그것도 문서화는 할 수 없고 장관의 구두 약속)을 가지고 대전협에서는 격렬한 토론과 투표 끝에 부결, 파업을 유지하기로 결정하였다. 예상했던대로 정부는 강경 대응과 보복성 조치들을 시작했다. 오늘 아침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내년 수련병원의 인력 결원, 군의관 결원 등은 생각지도 않고 본과 4학년 의대생들의 국시거부는 구제 없이 원칙대로 처리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시를 거부한 본과 4학년과 그 밑의 학년들이야 1년씩 인생의 쉼표를 찍고 간다고 치더라도, 수련병원과 군에서는 그 이상의 불편함과 혼란을 겪어야 할테니 안타깝다. 앞으로는 전공의들에게 의료법 59조를 들먹이며 면허정지 등의 형사고발 조치를 시작할 것이다.
그래도 20년 전의 파업과 다른 것은, 현재 의사 파업을 주도하는 전공의들이 개업의들과 달리 세무조사, 복지부 실사 등 정부의 우회적인 압박에서 자유롭다는 점이다. 전문의 자격증에 대한 전공의의 애착도 20년 전과 온도 차이가 있다. 의료법 59조로 전공의 누군가가 형사 고발을 당하게 되면 노동3법을 보장한 헌법 제33조 1항에 위헌이라는 소송으로 들어갈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그리고 마음이 더 급한 것은 의사 파업과 관련된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이다. 이대로 의사들의 파업이 장기화되고 국민들의 원성이 심해지면, 교체가 임박한 박장관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나머지 관련 공무원들의 승진은 앞으로 물건너 간건데, 과연 어떻게 의사들의 파업을 끝낼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의사 출신의 손영래 보건복지부 대변인이 의사들과의 간담회에서 '참을인자 세번' 운운한 건 자신들의 급한 마음이 반영된 것이다.
2000년 의약분업 이슈로 의사가 파업했을 때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구두 약속으로 파업이 끝났지만, 어젯밤 박장관의 구두약속으로는 의사들의 파업을 끝내기에 부족했다. 의협에서 정의한 4대악 의료정책의 '철회'는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고, '유보', '잠정적 중단' 정도는 생각해보겠다고 한다. 내가 전공의의 입장이라도 파업을 풀 명분이 없다. 그 명분은 정부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전의 의사 투쟁들과 다른 이번 전공의 파업의 결말이 궁금하다. 20년 전 파업의 결말과 다른 이번 파업의 결말에는, 부디 전공의들이 피해입지 않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올 수 있고, 공급자와 소비자가 모두 만족하는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논의의 장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참고 포스트)
1. https://beomdoc.tistory.com/121?category=837104
2. https://beomdoc.tistory.com/116?category=837104
3. https://beomdoc.tistory.com/106?category=837104
4. https://beomdoc.tistory.com/111?category=837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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