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파업을 어떻게 볼 것인가

2020. 8. 27. 18:12의료

현재 진행 중인 의사들의 파업이 처음은 아니다. 가장 규모가 컸던 20년 전의 의약분업 파업 투쟁을 기억하는 이가 많을 것이며, 가깝게는 2014년 이전 정권에서 추진하던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파업 투쟁이 있었다.

 

여러번의 파업 투쟁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의 파업은 결코 일반인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기가 어려웠다. 지금도 의사 파업 관련 기사의 댓글에는 의사들을 비판하는 댓글이 수없이 달린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코로나 사태에 의사들이 국민의 생명을 걸고 파업을 하다니 역시 돈만 아는 나쁜 놈들',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가 극에 달했다', '역시 밥그릇 문제구나', '파업하는 의사놈들 다 면허 취소시켜, 다 잘라!' 등등..

 

보기만 해도 답답하고 슬프다. 그래도 진정하고 '노동자의 파업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임을 강조한 2013년 한겨레신문의 기사를 아래에 가져왔다.

 

 

'현대차 노조는 파업 중독됐나’ ‘지금이 파업할 때인가’ ‘정신 나간 노조의 파업결의’ ‘노조 파업결의는 파렴치다’ ‘노조의 파업중독증’……

 

신문에서 이런 제목을 많이들 봤을 겁니다. 주로 경제신문이나 이른바 보수언론들이 파업을 파렴치, 정신 나간, 중독증 등의 말로 비판하곤 합니다. 파업을 하니 공장이 멈추고 수출도 줄어들어 간다고 합니다. 파업이 점점 길어지면 회사가 어려워지고 파업하지 않은 사람과 가족들까지 피해를 볼 수도 있겠죠. 또 사회적으로 분란이 커지니까 주변 사람들은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처럼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우리나라가 파업 때문에 혼란스러운 게 외국에 알려지면 국가 이미지가 나빠지고 국민들에게 큰 손해가 되는 것도 같습니다. 더구나 월급도 많이 받는 귀족노조가 파업이라니, 더 가난한 사람도 얌전히 일하며 열심히 사는데, 정말 이기적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겠죠. 파업은 정말 나쁜 행위인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과연 파업이란 이렇게 나쁜 것일까요?

 

기사의 앞부분인데 현재의 의사 파업을 대입시켜 이렇게 바꿔볼 수도 있겠다.

 

'의사협회는 파업 중독됐나’ ‘지금이 파업할 때인가’ ‘정신 나간 의사협회의 파업결의’ ‘의사협회의 파업결의는 파렴치다’ ‘의사협회의 파업중독증’……

 

신문에서 이런 제목을 많이들 봤을 겁니다. 주로 경제신문이나 이른바 보수언론들이 파업을 파렴치, 정신 나간, 중독증 등의 말로 비판하곤 합니다.(지금은 진보언론이 의사의 파업을 더 많이 비판한다.) 파업을 하니 진료·수술 예약이 멈추고 환자가 치료를 못받는다고 합니다. 파업이 점점 길어지면 병원들이 어려워지고, 파업하지 않은 사람과 가족들까지 피해를 볼 수도 있겠죠. 또 사회적으로 분란이 커지니까 주변 사람들은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처럼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우리나라가 파업 때문에 혼란스러운 게 외국에 알려지면 국가 이미지가 나빠지고 국민들에게 큰 손해가 되는 것도 같습니다. 더구나 월급도 많이 받는 의사들이 파업이라니, 더 가난한 사람도 얌전히 일하며 열심히 사는데, 정말 이기적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겠죠. 파업은 정말 나쁜 행위인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과연 파업이란 이렇게 나쁜 것일까요?

 

...

 

현대차 노조를 의사로 바꿔봤는데도 불구하고, 파업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중략)

헌법도 보장하는 파업을 하려면 반드시 노동조합이 있어야 합니다. 노동3권 중 단결권이 바로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권리이고, 노동조합이 사장과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놓고 협상할 권리를 단체교섭권이라고 해요. 이런 협상이 제대로 안 될 때 노동조합은 파업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결국 노동조합이 없다는 건 파업조차 할 수가 없다는 것이겠죠. 헌법이 보장한 노조를 결성할 수도, 파업을 할 수도 없게 하는 ‘무노조 경영’을,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기업 삼성에서, 그것도 21세기에 여전히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있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기사에는 삼성그룹에 ‘진짜 노조’가 설립됐다고 하지만, 노조 결성을 주도한 노동자들은 해고 등의 징계를 당했고 파업은 꿈도 못 꾸는 상황입니다.우리는 대부분 노동자이거나 예비 노동자입니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사람들은 모두 노동하지 않고 살 수 없습니다. 연봉이 많은 대기업에 취직하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든, 모두 일을 하고 월급을 받아 사는 노동자입니다. 그런데도 파업이란 나쁜 것, 옳지 않은 것이라는 그릇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노동자가 스스로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한 일도 때로 벌어집니다. 노동자가 파업을 해야 할 상황에 처할 때 다른 노동자가 파업은 나쁜 것이라고 비판을 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요?

 

(기사출처)'노동자 파업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 김진철 기자의 경제기사 바로 읽기,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568545.html

노동자 파업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

김진철 기자의 경제기사 바로 읽기 우리 대부분 졸업 뒤 노동자로 살아 ‘무노조 경영’은 자랑거리 될 수 없어

www.hani.co.kr

 

대한민국의 노동자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헌법 제33조에 의해 노동3권을 보장받는다. 그럼에도 의사들의 경우에는, '의료법 제59조', '진료개시 행정명령', '수많은 악플'과 같은 사법과 행정, 그리고 비난 여론으로 인해 의사들의 파업할 수 있는 권리는 제한되고 있다.

 

2014년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의사들이 파업을 준비하고 있을 때, 서울대보건대학원의 김창엽 교수가 소장을 맡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에서 <의사 파업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제목의 논평을 냈었다. 본 논평에서는, 다음과 같이 의사의 파업은 정당한 권리임을 밝히고 있다.

 

http://health.re.kr/?p=1401

의사 파업을 어떻게 볼 것인가

  우선 모든 파업은 일단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토 박아 두자. 노동자들의 단체 행동을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것으로야 어디 이 땅만 한 데가 또 있을까. 하지만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은 헌법

health.re.kr

의사들은 원격의료와 병원의 영리 자법인 설립 허용 등 정부의 의료 영리화 정책을 반대하다고 주장한다. 직접적으로는 원격의료가 의원 운영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걱정이 컸던 것 같고, 여기에 영리 자법인과 같은 정책이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

 

물론 속사정은 뒤섞여 있다. 수가를 비롯한 경제적 이유는 물론이고 여러 불만이 합해져 양상이 복잡하다. 게다가 ‘전선’은 갈수록 넓어진다. 건강보험과 의료제도 전반으로 비판과 항의 대상이 확대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파업의 이유를 시빗거리로 삼기는 어렵다. 거듭 말하지만, 설사 그것이 진료 수가 등 경제적인 것이라도 충분히 파업의 이유가 될 수 있다. 

(논평에서 인용)

 

 

지금까지 그 어떤 파업, 노동자들의 어떤 단체 행동도 밥그릇과 무관하지 않았다. 의사들의 파업이 이해관계에 충실한 것이라 해도 그것은 인류가 성취한 근대적 인권이라는 주장이다. 논평에서는 "심정적으로 의사들의 파업을 부당하다고 느낄지 몰라도 우리사회 구성원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라며 "의사들이 파업을 하겠다는 이유나 동기는 그 자체로는 부당하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본 논평에서는 대한민국의 의사만 파업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세계적으로 의사 파업은 드문 일이 아니다. 물론, 나라마다 의사의 형편이 다르고 정책과 체계가 다양한 만큼, 파업의 이유와 경과도 각양각색이다. 평면적 다양성보다는 역사적, 사회적 평가가 크게 다르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의사 파업 가운데 세계적 관심을 끌었던 것이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 지역 의사들의 파업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의사들만의 파업이라기보다는 의료인과 지역사회 주민들의 민영화 반대 운동이었다.

 

 

남유럽 경제위기에서 촉발된 스페인 정부의 긴축 정책, 그리고 이에 따른 병원과 의료기관의 민영화 시도가 시발점이었다. 2012년 10월부터 시작된 운동은 파업, 연좌농성, 항의 방문, 피켓팅, 세미나 등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대강의 경과는 다음 홈페이지를 참조할 것).

 

이들의 민영화 반대는 의료인의 흰색 가운에 빗대어 ‘하얀 물결’로 불렸는데, 15개월 동안의 장기 투쟁 끝에 지난 1월 27일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 6개 병원, 4개 전문치료센터, 27개 지역병원의 민영화 추진이 중지된 것이다(관련 기사).

 

 

여러 나라의 의사 파업이 다 이런 것은 아니다. 사회적 이슈보다는 자신이 이해관계 때문에 파업하는 것이 더 흔하다. 대표적으로 캐나다 새스캐치원 주 의사들의 파업과 이스라엘의 파업이 이런 예에 속한다.

 

캐나다 새스캐치원 주의 의사들은 1962년 주정부의 의료보험 도입에 반대하여 23일 동안 파업을 벌였다. 당시 의료보험 시행을 주도한 주지사가 그 유명한 토미 더글러스였다(<또 다른 사회는 가능하다> 데이브 마고쉬 지음, 김주연 옮김, 낮은산 펴냄). 의사들은 ‘사회주의’ 의료를 반대한다고 하면서, 제도가 시행되면 주를 떠나겠다고 위협했다.

 

정부는 다른 나라에서 의사를 불러오는 등의 조치로 대응했다. 결국 의사들이 의료보험에서 빠질 수 있도록 하고 진료 보수를 올리는 등 몇 가지 조건에 합의하면서 파업은 끝났다. 크게 봐서 이 파업은 ‘실패’했고, 의사들이 반대했던 의료보험은 새스캐치원 주는 물론 캐나다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한편, 이스라엘 의사들의 파업도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파업의 이유는 주로 공공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의 임금과 근로 조건이다. 2000년에는 127일 동안이나 진료를 하지 않았고, 2011년에도 158일 동안이나 파업을 지속했다.

 

진료 수가나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의사 파업이야 새로울 것이 없다. 이스라엘 말고도 많은 나라들의 의사가 비슷한 이유로 파업에 나선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이스라엘 의사들의 파업은 길고 지루한 파업과 협상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스페인, 캐나다, 이스라엘 의사들이 파업을 한 이유와 경과는 조금씩 다르다. 다만 한 가지, 상식이나 선입견과 달리 임금이나 소득, 노동조건만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스페인의 반민영화 파업이 바로 그런 예다.

(논평에서 인용)

 

 

'백의의 물결'로 불린 스페인의 의사 파업은 의료 민영화를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의 동의와 지지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당시 예약된 5만 건의 진료가 취소 됐고, 6,500건의 수술도 연기되는 등 의료총파업의 범위는 대단했다. 스페인의 보수 언론들은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한 환자들의 막대한 피해를 부각시켜 의사들의 파업을 맹비난했다. 그래도 결국 스페인의 6개 대형 공공병원의 민영화는 중단되었다.

 

 

스페인 의료인의 파업은 이런 점에서 당장의 교훈으로 삼을 만하다. 대립과 요구라는 점에서 의료인과 환자, 주민이 크게 나누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민영화 반대를 중심으로 이해관계가 분리되지 않았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

 

공공병원에서 일하던 의료인들에게는 일자리라는 현실 문제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것을 넘어섰다. 민영화가 단지 의료인의 실직 문제를 넘어 주민의 삶에 직접 나쁜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는 것을 설득한 것이다. 시민들이 동의했음은 물론이다.

 

2013년 5월 13일에 벌어진 주민 투표는 이들의 ‘연대’를 잘 보여 준다. 1백 개가 넘는 지역 조직과 민영화 반대 운동단체들이 의료인들과 함께 정부의 민영화 계획에 대한 주민 투표를 조직한 것이다. 1백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참여했고, 94퍼센트의 투표자가 반대했다.

(논평에서 인용)

 

다시 2020년의 대한민국으로 돌아와보자.

 

위 기사와 논평에서 봤던 것처럼, 대한민국 의사들의 파업은 파업을 했다는 그 자체로 비난을 받을 수는 없다. 설령 파업의 이유 중에 '의사의 희귀성'을 유지하여 '밥그릇'을 지키려는 목적이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COVID-19의 2차 대유행을 목전에 두고, 굳이 정부는 의과대학 정원 확충을 일방적으로 추진하여 유행병과 사투를 벌이는 의사들의 집단적인 반대를 이끌어냈다. 대한의사협회, 특히 대한전공의협의회는 파업을 피하고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차례 보건복지부와 진정성 있는 대화를 촉구했지만, 절박한 주장을 하는 전공의들을 '관리해야할 대상'으로 여기는 관계자들의 태도와 '유보', '잠정적 중단' 등 애매모호한 단어를 구사하면서 보여주기 식 대화를 하자는 주장에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갈 수 있는 명분을 잃은 전공의들은 정부와 서로 물러설 수 없는 파국을 향하고 있다.

 

이런 파업 과정과는 별개로, 의사들의 파업을 바라보는 여론은 각자의 정치 성향에 따라 많이 나뉘는 듯 하다. 의사들의 주장이 결국에는 대다수 국민들의 건강을 위한 것이라는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수많은 유튜브 동영상과 카드 뉴스, 인터뷰 기사들이 배포되었지만, 국민 개개인은 이미 마음 속에 결론을 내려놓고 의사들의 파업을 바라본다. 의사들의 파업을 바라보는 보도 태도가 언론사들의 정치 성향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언제쯤 자신의 정치 성향을 벗어나서 대한민국의 의료에 대해 소신있는 발언을 하고 열린 논의를 할 수 있을까? 나는 이번 파업의 결론이 어느 한편의 실력 대결의 승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을 위한 발전적인 논의의 장이 열리는 것으로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의사의 파업도 다른 노동자의 파업들처럼 그 자체로 존중받기를 바란다.

 

출처: 참여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