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11. 23:45ㆍ의료
이전 포스트에서 '과학은 예술·영화·문학 등 인간의 문화에게 영향을 주고, 다시 그 반대로 영향을 받는 상호 작용을 한다'는 내용을 올렸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탄생과 질병, 회복과 죽음을 다루는 <의학>을 소재로 소설과 드라마,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2020년 TVN에서 방영한 의학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생)도 최종회 시청률 전국 14.1%를 기록할 정도로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의사들에게도 <슬의생>은 역대 의학 드라마들 중 가장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병원에서 일하는 평범한(?) 의사들의 모습에 공감이 되고, 수술실, 중환자실을 실감나게 잘 살린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 과거 의학 드라마에서는 어려운 수술에 대한 고뇌, 의사들 사이의 알력 다툼 처럼 너무 진중한 내용이 많았다면, <슬의생>에서는 동료 의사들의 인간 관계나 인생 고민, 환자 고민에 초점을 두었다는 점이 제일 큰 차별점일 것이다.
그리고 한명한명 살아숨쉬는 캐릭터들과, 예측하기 어렵지만 개연성있는 내용 전개가 돋보였다.
주인공들인 서울대의대 99학번 입학동기 5명은 각각 개성이 넘치지만, 나는 그중에서 CS(흉부외과)의사 김준완(정경호 분) 교수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의료전문지<라포르시안>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슬의생>에 등장하는 의사 캐릭터 중 실제 의료현장에 있을 법한 가장 현실적인 인물은 누구인가?'를 물었는데 김준완 교수가 1위로 뽑혔었다.
김준완 교수는 실수한 전공의를 혹독하게 혼내고, 보호자에게 냉정하게 대하는 까칠한 의사로 나오지만, 사실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겉모습과 다르게 환자, 보호자, 동료 의사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소위 '츤데레' 인물이다.
김준완 교수 에피소드 중에 뭉클했던 장면이다.
3화에서 실습생 장홍도와 윤복에게 자기는 PC방에서 선배 꼬임에 넘어가서 흉부외과에 왔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사실은 수술 후 살아난 환자의 심장에 감동해서 흉부외과를 선택했다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실습생 장홍도와 윤복에게도, 심장 수술을 마치고 봉합만을 남겨둔채 아기 심장을 만져보게 한다. 심장의 박동에서 느껴지는 생명의 위대함을 경험한다면, 의대생 누구라도 흉부외과의사를 꿈꾸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인기없는 흉부외과로 꼬실려는 의도된 행동이었다는게 나오지만, 이런 깨알같은 재미가 <슬의생>의 매력 포인트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서 의사에 대한 이미지는 다른 나라에 비해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슬의생>에서 굳이 꼽자면 흉부외과의 천명태 교수나 신경외과의 민기준 교수 정도의 이미지일지도 모르겠다.
코로나19사태라는 전쟁터에서 헌신을 아끼지 않았던 의사들이 광장으로 모이고 있다. 누구보다 환자들 곁을 지키고자 하는 의사들이 잠시 자신이 일하는 병원을 떠나 연대와 투쟁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돈벌이', '밥그릇' 들과는 다른 각자의 사연이 있음을 밝히고 싶다.
그런 의사들 각자의 사연을 세련되고 재밌는 이야기로 풀어준 신원호 감독과 제작진에게 의사이자 애청자로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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