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16. 15:24ㆍ의료
코로나 19 사태로 의사의 역할이 다시 주목받고,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같은 의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들이 각광을 받으면서, '어떤 의사가 윤리적인 의사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자신의 시간과 사생활, 열정과 노력을 모두 의료현장에 투입하여 무엇인가 성과를 만들어낼 때 우리는 감동을 얻고, 훌륭한 의사로 인식하게 되며,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의사들에 대해 좋지 않은 편견과 인식을 가진 사람들은 종종 만날 수 있다.
물론 모든 의사가 고결하고 숭고한 희생 정신을 가진 완벽한 인성의 사람들이면 좋겠지만, 사실상 불가능하고 그렇게 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우리가 생애 주기 상 꼭 만나고 진료를 받아야 하는 의사들의 윤리, 의사다움에 대해 잘 정리한 글이 있어 가져왔다.
(출처)
전문직 윤리로서의 의료윤리 - 의사다움이란 Medical Ethics as Professional Ethics
권복규 이화여자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의학교육학교실
Korean J Gastroenterol Vol. 60 No. 3, 135-139
(원문 다운로드)
이중 공감되는 부분은 발췌했는데, 위 원문을 모두 읽으실 시간이 없으신 분들은 발췌한 부분만 읽어주셔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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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사회가 위기이다. 교수는 교수대로, 봉직의는 봉직의대로, 개원의는 개원의대로 팍팍한 의료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지만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다. 의사가 사회적인 존경은 물론, 직업적 권위에다가 상당한 소득까지 올릴 수 있었던 과거가 불과 한 세대 이전의 일이지만, 지금은 그 중 어느 것도 바라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한 해 3천 5백명 이상의 의사들이 새로이 배출되어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지만 개별 의사의 소득은 오히려 예전보다 줄고 있으며, 환자들의 갖가지 요구가 늘어나면서 이들의 불만과 분쟁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고령화와 더불어 의료비는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어서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정부는 어떻게든 이를 억제하기 위해 의사들의 의료행위를 계속 간섭하고 억압한다. 이렇듯 한국의 의사는 환자, 사회, 정부에 의해 사방으로 포위된 형국에 있는데, 의사의 입장을 이해하고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나 세력은 그 누구도 없다. 의사가 아닌 많은 이들에게, 의사는 병을 앓고 있으므로 약자인 ‘환자’에 대해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모든 희생을 감수해내야 하는 존재이며, 여전히 ‘사회지도층’에 속하는 기득권층이고, 어느 누구보다도 높은 수준의 ‘도덕적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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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사회 내의 일부 강경 집단은 이제까지 의사들을 구속하기만 했던 ‘윤리’는 집어치우고, 정부와 사회에 대한 강고한 투쟁을 하는 것이 더욱 생산적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에 일리가 없지는 않다.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윤리’는 사회적 소통을 촉진하고, 바람직한 사회적 선을 증진시키기 보다는, 마음에 들지 않거나 적대시하는 개인, 혹은 집단들을 비난하고 이들을 몰락시키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사회적 모순과 정치적 갈등을 개인의 ‘윤리 문제’로 치환시키고, 누구누구는 이런저런 문제가 있으므로 정치적, 사회적 역할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과거로부터 오늘날까지 익숙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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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전통 유가적 생활태도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유가적 세계관에서는 예컨대 자기 몸을 잘 닦고 처신하며(修身), 집안을 바르게 운영하는(齊家) 능력이 국가와 사회에서 공직을 맡기에 적합 한 자질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윤리’를 논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어릴 때부터 몸에 익히고 배운 ‘사람답게 사는 길’의 측면에서 이를 이해하게 된다. 예컨대 효성이 지극하며, 물질적 이익에 초연하고, 성적 욕망을 잘 통제하며, 인간관계가 좋은(인정이 많은) 사람을 우리는 ‘윤리적 인간’으로 이해한다. 반면, 안팎과 신념이 일치하고, 정직하며, 사적 인간관계를 좀 훼손하더라도(인정머리가 없더라도) 공적 직무에 충실하며, 합당한 범위 내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형을 우리는 그다지 ‘윤리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사실 후자는 서양 계몽주의에서 비롯된 근대인의 윤리적 이상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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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 윤리는 의사의 의사다움(professional integrity)이나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을 얼마나 잘 준수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규범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특정 의사 A씨가 부모님에게 불효하고 부모님과 의절하고 산다 해도, 성적 파트너를 계속 갈아치우는 난봉꾼이라 해도,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했다 해도, 혹은 부동산 투기를 해서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 해도 그가 의사로서 환자에게 적절하게 행위하고 있는 한 전문직 윤리의 입장에서는 그를 비난할 어떠한 이유도 찾 을 수 없다. 여전히 전근대적 문화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윤리(personal ethics)와 직무윤리를 혼 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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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새삼스럽게 왜 지금 전문직 윤리가 문제가 되는 가? 그것은 위기에 처한 한국 의료 상황에서 의사 집단의 전 문직 존엄(professional dignity)의 회복을 위해 전문직 윤리 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오늘날의 의료 상황, 즉 1988년 이후 전국민 건강 보험제도의 수립과 만성화된 저수가 정책, 그리고 의과대학 신증설에 따른 신규 배출 의사의 증가로 인해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정통 의료가 아닌 의료 상품의 영역으로 수많은 의사들이 몰려갔으며, 의료가 일종의 서비스 상품으로 여겨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의사 집단 내의 직역 간, 혹은 의사 간 갈등도 심화되었다. 의료 서비스에 대한 환자들의 기대가 커짐에 따라서 불만도 커졌고, 의사의 사회적 지위가 추락함에 따라 존경심도 더불어 떨어지고 있으며, 근본적으로 모순적인 보건의료 정책에서 기인한 각종 부정적 사례들-허위/부당 청구, 리베이트, 보험 사기 등등-이 전체 의사의 위상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오늘날의 의사들은 과거보다 더욱 심한 윤리적 갈등 및 스트레스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의사 집단 전체로서도 깊은 위기의식을 안게 되었다. 전문직 윤리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는 필사적인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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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다움이란 허구적인 ‘허준’, 또는 장기려 선생이나 이태석 신부와 같은 ‘이상적인 의사(ideal doctor)’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기능하는 바람직한 의사의 모델을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상(ideal)’과 모델(model)을 늘 혼동하는데, 장기려 선생이나 이태석 신부는 도덕적 이상 내지 도덕적 영웅은 될 수 있겠지만, 모든 의사가 그렇게 살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다. 모든 의사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면 그것은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수많은 위선자(hypocrite)만을 낳을 뿐이다. 조선시대는 성리학의 도덕적 이상을 국가적으로 추구한 사회였지만, 그 결과는 소수의 진실한 영웅을 제외하고 선비를 자처한 수많은 무위도식하는 위선자를 낳았을 뿐이었다... 어쨌든 21세기라는 글로벌화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적어도 현실에 적합한 의사의 모델을 구성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 한다. 이 모델을 구성하는 것은 의사 집단, 특히 의사 단체의 역할이다. 그리고 이 의사의 모델이 추구하는 규범이 바로 의사의 전문직 윤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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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이후 근대 의료가 성립하면서, 수많은 돌팔이들과 각종 의료분파와의 격렬한 투쟁 과정을 통해 자연과학에 입각한 근대의학이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게 되면서 이를 담당한 잘 교 육받은의사들이 사회에 대해 이러저러한 규범을 지키겠다고 선언하였고, 그 반대급부로 직업적 독립성과 자율성, 그리고 직업적 존엄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이것이 선진국 의사들이 겪어 온 역사적 경험이다...선진국 의사들의 높은 위상은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체적인 규범을 준수하지 않는 동료들을 계속 솎아내고, 후속 세대들을 규범에 맞도록 교육하면서 자기들의 위상을 정립한 것이다. 최근 자본과 각종 의료산업의 팽창, 보험회사와 건강관리기관(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 등의 성장으로 인해 의사의 전문적 자율성과 독립성이 크게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은 이들도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선진국의 의사 사회는 그러한 흐름에 대해 자신의 독립성과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능동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애초에 프로페셔널리즘이 발달하지 못했던 우리 의사들은 이 흐름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별적으로는 온갖 애를 쓰고 있지만, 전체적인 조망에 입각한 집단적인 노력은 크게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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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전문직 윤리는 의사가 단순한 ‘자영업자’가 아니라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의업은 ‘도덕적 전문직(moral profession)’인데,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구하고 보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사에게는 특정한 도덕적 의무가 부여된 다. 그러나 이 의무는 사회가 그에 합당한 처우를 보장할 때 정당화될 수 있다... 어떤 의료제도를 택하였든 간에 이런 인식을 가지고 개별 의사-의사 단체-사회(또는 정부)가 유기적으로 피드백을 주고받 는 것이 선진국의 모습이다. 반면, 이러한 경험이 부재한 개발 도상국 등에서는 질 낮은 의학교육을 통해 의사를 마구잡이로 양산하고, 이들은 개별적으로 마치 일반 자영업자처럼 행동하며, 결과적으로 의사에 대한 사회적 평판이나 처우도 낮아진다. 사회적 평판이 형편없는 질 낮은 의사는 결국은 그 사회에 이득이 아닌 해악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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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독립성과 자율성 역시 의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의업은 고도의 전문직이기 때문에 의사 아닌 누구도 이 영역을 정확히 이해하고 평가하기 어려우므로, 사회(환자)의 최선의 이득을 위해 그러한 독립성 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한 독립성과 자율성은 개별 의사의 수준은 물론 의사 집단의 수준에서 드러난다. 즉 의사 단체(의사협회 또는 각종 학회)는 개별 의사의 진료의 질을 보장하고, 증진시켜야 하며, 상급 의사, 또는 적절한 권 한을 가진 동료 의사들을 통해 개별 의사의 진료를 판단, 평가할 수 있다. 예컨대 어떤 진료가 ‘비과학적 진료’ 혹은 ‘과잉 진료’인지, 혹은 어떤 상황에서 해당 진료가 ‘성추행’의 소지 를 안고 있는지 등의 문제는 일반인이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동료 의사들만이 판정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진료 행위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도덕적 규범성’ 역시 의학지식과 술기뿐 아니라 의료를 형성하는 핵심 요소로서 의사들 모두가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수술을 하기 전에 환자에게 ‘동의 (informed consent)’를 받을 때 어떤 요소들을 반드시 설명해야 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설명해야 환자가 겁먹거나 위축되지 않으면서 올바른 판단을 하게 될 것인가 등의 문제는 의사의 인성과 무관하게 모든 의사가 배워야 할 내용들이다...의료 현장을 모르는 이들이 오로지 상식적인 법의 잣대만을 가지고 들이댈 때 현실에서는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1997년의 소위 ‘보라매병원 사건’에서 목격한 바 있다. 이는 작년의 ‘아동 및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수많은 의사들을 잠재적 성범죄자의 목록에 올려놓은 바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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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의학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의사의 바른 판단과 결정을 요하는 어려운 윤리적 문제가 자꾸만 증가하고 있다. 낙태와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같은 생명의 시작과 관련된 문 제, 유전자검사와 같이 인간에 대한 차별과 우생학적 태도를 초래할 수 있는 기술, 희소한 인간 장기의 배분, 가망 없는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 중단과 같은 문제들이다...최근의 의료윤리는 의사의 전문직 윤리와 함께 이러한 생명윤리(bioethics)적 쟁점들을 함께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의사들의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전문직 윤리가 그 근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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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업성과 전문직 정신의 핵심에는 ‘조직화된 의료 (organized medicine)’가 있다. 어떤 의사도 개인으로서는 전문직업성의 규정과 실천을 감당하기 어렵다. 조직화된, 책임감을 가진 의사 단체만이 전체로서 지켜야 할 규범을 제시하고, 이를 회원들에게 교육하며, 문제가 있는 회원들은 교정을 하고, 사회에 대해서 떳떳하게 요구사항을 제시할 수 있다. 때로는 그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게끔 사회를 설득, 또는 압박할 수 있다. 1877년 미국 최초의 주 면허법은 주 정부가 원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당시 미국 앨러배마 주의 주 의사회에서 정부를 설득하여 돌팔이들을 의료에서 배제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러한 단체를 조직하고, 규칙(rule)을 만들며, 이를 준수하는 것이 책임있는 전문직의 태도이며, 또 그러한 태도가 바로 성숙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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