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대리처방과 보호자 상담 수가

2020. 6. 2. 15:31의료

아래는 2020년 2월, 제가 작성한 현행 대리처방의 불합리함을 알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보호자 상담 수가의 신설을 촉구한 의견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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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점점 더 고령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고, 이에 따라 의료기관을 직접 방문하지 못하는 거동 불편 환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대신하여 보호자가 의료기관을 방문하여 기존 약물을 처방받는 이른바 '대리처방'은 의료법에서 명시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의사의 선의와,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과 관련법령의 고시에 근거해, 재진진찰료 소정점수의 50%만 수가를 받으며 환자 가족에게 대리처방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이렇게 일선 의사들은 최대한 현실에 맞춰서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진료해 왔습니다만, 2018년 '대리 처방'을 명문화한 개정 의료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개정 취지를 살펴보면, 기존 의료법에는 대리처방의 개념이 포함되지 않았고, 처방전 발급 규정을 위반하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 1년 이하 자격정지 등 행정처분이 가능하니, 현실에 맞게 의료법을 개정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취지와는 다르게, 개정된 의료법에는 엄격한 대리처방 처벌 규정이 포함되어 있는데, 의료인이 대리처방의 교부 요건을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보호자 등이 대리처방의 수령 요건을 위반했을 경우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여, 다양한 이유로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못하는 환자의 의사와 보호자는 자칫하면 잠재적 범죄자로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러한데, 어떤 의사가 위험을 무릅쓰고 대리처방 환자를 볼 수 있을까요?

대리처방을 명문화한 개정 의료법의 시행이 한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야, 보건복지부는 대리수령의 요건과 절차를 구체화한 하위법령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그 기준이 모호하고 절차가 복잡하여, 의사와 보호자에게 혼란과 불안을 점점 더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개정된 의료법의 시행은 시작되면 거동 불편 환자가 많아지고 있는 고령화 시대에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가 앞서게 됩니다.

이러한 우려를 조금이라도 불식시키고자, 신경계 4대 질환(치매, 뇌졸중, 파킨슨증, 뇌전증)에 대해 <보호자 상담 수가>의 신설을 촉구합니다!

대리처방은 재진진찰료 소정점수의 50%를 산정해왔습니다. 이번 개정 의료법과 하위 법령에도 대리처방 수가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변동은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의사의 입장에서는 보호자에게 간접적으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해야 하는 긴 시간과 노력이 더 들고, 불확실한 정보로 약물을 처방하고 이후의 결과를 감수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합리적 근거 없이 오히려 더 낮은 절반의 수가만 인정받는 셈입니다.

비현실적으로 낮은 수가의 폐해는 상당합니다.

 

대리처방의 교부요건이 모호하고 절차가 복잡한데 수가마저 낮다면, 일선 의사들은 환자가 대리처방의 교부요건에 해당하는지 까다롭게 적용할 것입니다. 게다가 대리처방의 교부조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하더라도, 낮은 수가로 인해 보호자와 상담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면, 의사가 얻게되는 환자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환자의 질병에 대한 정보와 돌봄 방법에 대해 문의하고자 하는 보호자에게도 더 자세한 설명을 해줄 수가 없고, 이는 결국 환자의 건강권 침해로 돌아가게 됩니다.

심지어 저렴한 본인부담금을 적용받기 위해 대리처방을 악용할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실제 일부 환자와 보호자들 사이에선 보호자 대리처방 시 본인부담금을 50% 할인받을 수 있다며 진료비를 아낄 수 있는 비법으로 정보가 공유되기도 합니다. ​

이와 같은 대리처방의 악용을 막고, 의료기관이 정당한 수가를 지급받아 거동이 불편한 환자에게 적절한 약물이 처방되고 보호자가 환자를 더 잘 이해하고 돌보기 위해서는 <보호자 상담 수가>의 신설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보호자 상담 수가>는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어야 함이 마땅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절대적으로 많은 질병의 특수성과 대리 처방의 수요가 높은 우선 순위에 근거하여 신경계 4대 질환(치매, 뇌졸중, 파킨슨증, 뇌전증)에 대해 먼저 도입할 것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환자를 위한 최선의 진료 원칙은 의료기관에서 환자를 직접 진찰하고 정확한 진단을 내려 적절한 치료를 하는 대면진료입니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담당의사에게 대리 처방을 부탁하는 보호자를 못 본 채할 수 없어, 의사는 비대면 진료의 위험과 절반의 진료비를 감수하였고, 조심스럽게 대리 처방을 해왔습니다. 

 

본 의료법 개정안의 제안 이유에는 "환자의 건강권에 이바지하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현실에 맞게 고쳐보겠다고 만든 의료법이 오히려 일선에서 일하는 의사와 환자를 케어하는 보호자에게 범죄자가 될 가능성을 열어버려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의사와 환자, 보호자의 어려운 마음을 이해한다면, 보호자와 충분한 상담 시간을 확보하여 거동이 불편한 환자에게 안전한 약물 처방이 가능하고, 보호자에게 환자 돌봄 정보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도록, 현실적 수준의 <보호자 상담 수가>를 신설하기 바랍니다.

출처: 메디게이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