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1. 12:00ㆍ커뮤니티, 병원, 요양원
의료 취약지의 해소를 위해 의사를 더 많이 양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부와 여당에서 나오고 있다.
이번에 보건복지부에서는 "의대정원 확대 추진방안"을 만들었는데, 매년 400명씩 10년간 4천명의 의사를 기존 의대정원을 증원함으로써 뽑겠다고 한다. 매년 추가로 증원된 의사 400명 중 300명은 지역 내 중증, 필수 의료분야에 의무적으로 종사하도록 하고, 50명은 역학조사관, 중증외상 등 특수, 전문분야 인재로, 나머지 50명은 기초과학, 제약/바이오 등 의과학 분야의 인재로 양성하겠다고 한다.
이중 가장 많은 인원을 차지하는 300명은 '지역의사선발전형'으로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지역 내 공공의료 및 중증/필수 의료기능 수행 의료기관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복무하게 된다고 한다. 또한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전문과목은 내과, 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필수 전문과목으로 한정되고, 의무 복무 불이행 시 면허 취소 및 장학금 환수 등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한다.
그러면 정말 "의사가 현재 부족하기 때문에, 의료취약지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가?"에 대해 먼저 짚어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래서 대한의사협회에서는 '정부가 지정한 의료취약지'에 있는 시·군·구 의사회를 대상으로 실태 파악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주목할 점은, 의료취약지로 지정된 의사회 절반 이상이 의료취약지로 지정된 사실도 몰랐으며 지정에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해당 지역 의료 인력 71%가 타지역에 거주하며 타지역 거주 이유 1위로 '자녀 교육'을 꼽았다.
의료 취약지가 생기는 원인에 대해서는 "의료기관 운영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답이 31%로 가장 많았고, 의료 취약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는 "민간 의료기관 경영을 위한 보상 기전 마련"(43%), "의료 인력에 적정 보수 제공"(27%), "지역 주민에 대한 이동 서비스 지원 등 후송 체계 강화"(18%), "의료 인력의 자기 계발 기회 및 교육 제공"(9%) 순으로 답했다.
소속 지역에 국공립 의료기관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94%가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해당 국공립 의료기관이 응급환자, 소아 청소년 환자 및 분만 환자를 진료할 충분한 여건을 갖추고 있나"는 질문에는 65%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의료 취약지 사업(응급의료, 소아청소년과 및 분만 환자 진료)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가"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89%나 되었다.
본 설문조사의 결과는 지역별 의료서비스 격차의 발생 원인이 의사의 부족이 아니라, 의료 취약지역의 교육 환경과 같은 기본 인프라의 부족,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는 의료기관과 의료 인력에 대한 보상 기전의 미비 등이었음을 나타낸다.
하지만, '의대정원 확대 추진방안'을 발표하는 보건복지부 담당자들은 의지가 확고해보였다. 참석한 의사들이 아무리 논리적, 통계적 이유를 들어 문제점을 지적해도, 이미 답은 정해놓고 있는 듯 했다. 의사의 의견이 배제된 일방적인 의료 정책 추진에 반대하여 전공의와 의대생들도 파업 투쟁에 동참한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부분적인 파업만 가능한 상황에서 정부의 뜻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의료 현장을 모르는 이들이 오로지 상식적인 법의 잣대만을 가지고 들이댈 때 현실에서는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1997년의 '보라매병원 사건', 2011년의 '아동 및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 등에서 목격한 바 있다.
의사들이 그렇게 반대했는데도 추진했던 의전원 제도가 많은 문제를 가지고 폐지되었던 것 처럼, 이번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을 통해 양성된 의사들이, 과연 정부의 뜻대로 의료취약지의 공공의료/필수의료 분야에서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의사들로 성장하게 될 것인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땜질식으로 만든 정책과 질 낮은 의학 교육을 통해 마구잡이로 양산된 의사들은 개별적으로 마치 일반 자영업자처럼 행동하며, 의사에 대한 사회적 평판이나 처우도 낮아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사회적 평판이 형편없는 질 낮은 의사는 결국은 그 사회에도 이득이 아닌 해악이 될 뿐이다.
(이전 포스트 참고)
https://beomdoc.tistory.com/m/71?category=837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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