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4. 15:06ㆍ커뮤니티, 병원, 요양원
지난 포스팅(2020년의 원격의료(telemedicine)와 앞으로의 10년(1) https://beomdoc.tistory.com/15)에서, 개원의로서 원격의료를 바라보는 입장을 정리했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유행으로 병원 내 감염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원격의료는 논외로 하더라도, 점점 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의사와 환자의 접점을 만들려는 수요는 커질 수 밖에 없으므로, 그 과정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핵심 가치'를 이번 포스팅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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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와 인간의 바둑 대결에서 알파고가 압승을 거두고, 의사의 진단과 치료 결정 과정을 구체화 시키는 왓슨과 같은 AI가 점점 더 양산화될 수록, 의사들은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다. 그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근로기준법 적용도 못받으면서 수련받아 의사 면허와 전문의 자격증을 따고, 큰 돈들이고 입에 단내 나도록 진료해서 병원도 차렸건만, 이제는 기술이 발전해서 내 직업이 없어진다니.. 큰 위기 상황이 아닐 수 없다.
AI의 경우는 그나마 최근이지만, 원격의료 아젠다는 나온지 거의 20년이 돼가고 있음에도, 의사들은 애써 원격의료 자체를 반대하고, 관련 논의를 무시하고, 미뤄온 것이 사실이다.
원격의료 아젠다는 AI와는 성격이 좀 다른 부분이 있는데, AI 보다는 훨씬 간편하고 바로 실현이 가능하다는 점과, 지역사회 1차 의료기관의 장이라는 의사로서의 가장 큰 직업 영역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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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의 장단점에 대해 많은 얘기들이 있지만, 오랫동안 문제점으로 거론되어 왔던 것이 <의료전달체계의 미정립>이라는 부분이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전체 의사 중 전문의가 약70%의 비율로 있고, 환자들도 자신들이 치료받을 의료기관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일부 의료 관련 학자들과 정부 인사들은 현재의 대한민국 의료전달체계는 정상이 아니므로, 서구권의 의료전달체계, 즉 1차 의료기관(의원)에서는 간단한 치료와 만성질환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필요할 경우 상급의료기관으로의 연결고리 내지는 gate keeper 역할을 하도록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의원에서는 많은 각과 전문의들이 직접 고난이도의 검사와 시술을 하기도 하고, 수술실을 운영하면서 전신 마취 수술을 하기도 하고, 입원실에서 환자들을 365일 24시간 치료하기도 한다.
게다가 의료기관 중 90% 이상이 민간 자본으로 설립되었고, 대한민국의 특수한<보건의료의 저비용 구조>(이 부분은 따로 추후에 포스팅하겠다)로 인해, 다른 나라의 의사들은 생각할 수도 없는 많은 환자를 일정한 시간 내에 진료해야 의료기관의 운영이 가능한 구조가 만들어져, 우리 국민들은 빠른 시간 안에 좋은 교육과 경험을 쌓은 전문의들에게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진료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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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다고, 마냥 좋을 것만 같은 대한민국의 의료시스템에서도 문제는 있다.
환자들은 자신들이 치료받을 의료기관이나 의사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은 좋지만, 반대로 얘기하면 국민이 생애 주기 상 그때그때 필요한 진료를 일관되게 받을 수 없다는 부분이 생긴다. 예를 들어, 아기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부모가 의사에게 필요한 정보를 받고자 해도,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가 꼭 수술이 필요한지 의사한테 물어보고 싶어도, 고령으로 인해 쾌유가 불가능한 상황에 빠진 환자나 가족이 의사에게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고자 해도, 빠른 시간에 많은 환자를 봐야 하는 의사들은 일일이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을 해주기가 어렵다.
의료 자원 배분에도 불균형이 생길 수 있다. 환자가 자신에게 맞는 최고의 의사를 찾기 위해서, 이 병원과 저 병원, 이 의사와 저 의사를 진료 받으러 다니는 닥터 쇼핑이 발생하면, 한정된 의료 자원이 당장 꼭 필요한 환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을 지연시키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아무래도 많은 환자들을 봐야 그 경영을 유지할 수 있는 의료기관과 개업의의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검사나 약물 치료, 수술 등의 의료행위를 늘려볼 수 있는 기회로 만들 수도 있다.(이런 의료행위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니 오해는 없기를 바란다. 의료자원의 배분 문제로 독자들이 봐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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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면진료를 기반으로 한 의료시스템에서도 의료전달체계가 정립되지 못했는데, 원격의료가 단순하게 탑-다운 방식으로 주입되면, 환자들은 인간적인 진료를 못받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며, 의료자원 배분의 불균형도 더욱 커질 것이다.
장단점이 공존하는 대한민국의 의료시스템에 원격의료가 도입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핵심 가치'를 만들어, 대면진료를 기반한 현재 의료시스템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은 커지게 해야 한다.
그 핵심 가치는 바로, '환자가 <단골의사>를 선택하여 등록하고, 이를 기반으로 원격의료가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단골의사>라는 개념은 기존의 주치의 개념과는 다르다. 기존의 주치의 개념에서는 국민 한 사람이 태어날 때 부터 강제로 주치의를 배정받고, 일생 동안 이 주치의를 통해서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받고, 주치의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의료적 문제가 발생할 때에는 상급 의료 기관으로 전원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국민은 의사나 의료기관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없어지게 되고, 주치의도 정해진 환자만을 진료하면서 새로운 의료 기술이나 서비스의 도입에 소극적이게 된다는 단점이 생기게 된다.
<단골의사>는 일본이 고령화 사회에 대응하여 만든 <지역포괄케어>에서 나온 개념으로서, 지역사회에서 <끊임 없는 의료, 개호>를 제공하는 중심에 <지역의료, 보건, 복지를 담당하고 필요할 때에는 전문의, 전문 의료기관을 연계> 시켜줄 수 있는 단골의사를 두고, 일본의 각 지역의사회에서는 적극적인 <단골의사 기능연수제도>를 통해 단골의사의 역량을 높이고 있다.
민간의료기관이 대다수를 차지 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주치의 제도는 자리잡을 수가 없었지만, 노인 환자와 같이 의료 서비스가 지속적으로 많이 필요한 분들 부터 단골의사에게 등록하여 통합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골의사가 기반이 된 원격의료>에서는, 환자가 자신에게 등록된 단골의사를 통해서 원격의료가 이뤄지게 되는데, 환자에게도 앱이나 특정 플랫폼에서 의사의 경력이나 평가를 보고 선택하거나 추후 변경할 수 있도록 한다. 의사는 자신에게 등록된 환자에게 일관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다가, 앱을 통해 쉽게 관련 복지 서비스나 지역 사회 정보를 공유하고, 전문 의료기관의 진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이 단골의사가 연계해줄 수 있는 상급병원의 정보와 의료진과의 컨택을 미리 확보해둘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살아가면서 생길 수 밖에 없는 의료적 문제에 맞딱뜨렸을 때, 적절하고 끊김 없는 의료 서비스를 받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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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원격의료를 도입하기 위해 <단골의사 제도>가 필요함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단골의사 개념도 대한민국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그동안 만들어진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병원과 의사 이용 패턴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논의와 고민이 필요하다. 이 부분도 얘기하려면 너무 길어지므로 추후에 포스팅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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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제 경북지역에서 내과 개원의사 한분이 하늘 나라로 가셨다.
코비드19 확진자가 폭증하던 상황에도 아픈 환자들을 진료하시다가 감염되셨다고 한다.
고인께서 진료하셨던 1차의료기관(의원)은 감염병 전담 지정병원은 아니었지만, 1차 의료기관에서 진료하시는 분들이 있었기에, 2차 3차 의료기관이 과포화되지 않았고, 지역의 의료붕괴를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방식의 의료시스템이 정답인지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의사들은 모두 선의로써 이 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정된 재원과 인력에서도 의사들은 최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분의 삶과 죽음이 그 증거이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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