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의 도덕성

2022. 5. 20. 11:21과학

의사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많은 법안과 제도들이 계속 만들었지만, 2021년 의사들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수술실 CCTV설치의무화 법안”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 법안은 본래 전신 마취 중인 환자를 담당 의사가 아닌 무자격 의료인 또는 무면허 직원이 수술하게 되는 것을 막고자 논의가 시작되었는데, 성형 수술 중 사망 사건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의사의 수술 행위 자체를 빠짐없이 감시할 목적으로 법안의 국회 통과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의사들은 본 법안에 대해 반대하면서 다음과 같은 논리로 항변하였다.

 

“수술은 신체의 일부를 자르거나 붙이는 것과 같은 물리적 처치와 전신 마취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의료 행위인데, 이 과정을 동료 의사도 아닌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다면,의사는 수술의 위험성을 과도하게 인식하게 되고, 이는 환자에게 꼭 필요한 수술조차 받기 어려운 결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환자의 수술 중 벌거벗은 신체의 안과 밖이 디지털 동영상 기록으로 남게 되고, 아무리 이 자료를 철저하게 보호한다고 하더라도, 누군가가 악용할 목적으로 접근한다면 정말로 단 한명의 피해자가 없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다.”

 

“이런 심각한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도 수술실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하지 않고 있다.”

 

“수술실 출입 기록 보관과 동료 의사 평가제 등과 같이 대리수술과 수술 중 의료사고를 막는 다른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처럼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는 논리적으로 상당히 모순된 법안이었지만, 결국에는 국회를 통과하였고 세부 시행규칙의 논의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전문가의 진실된 의견이 정치적으로는 직역 이기주의로 철저히 매도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인간은 과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동물인지 의문을 가진 신경과의사는 나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조너선 하이트 <바른마음> 표지

 

<바른 마음(The righteous mind)>의 저자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는 뉴욕 대학 교수로서 도덕심리학 분야의 선구자이자, 각종 정치외교 전문지에서 “세계 100대 사상가”로 꼽히는 각광받는 지식인이다. 도덕심리학은 우리가 어떻게 남들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어떻게 사람들과 이런저런 팀을 이루며, 또 어떻게 남들과 갈등이 생기고,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지 그 정신 기제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저자는 소개한다.

 

실제로 인간은 수학 공식이나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를 돌아보면 단 한점의 위선이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러한 위선은 끝없는 갈등을 불러 일으킨다. 여기서 사람들은 제각각 자기편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고, 자기편의 가치관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무엇보다 확실하므로, 상대편은 어리석고 사악한 게 틀림없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앞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 제정 과정에서 본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옳음을 판단할 때 합리나 이성을 따르기보다는, 자기편의 주장이라면 맹목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바른 마음>에서도 1980년대까지 도덕심리학을 주름잡았던 ‘합리주의’에 대해 먼저 살펴본다. 합리주의에 따르면,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자신이 피해를 본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도덕성을 구축해 나간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은 피해를 보기 싫다는 경험을 통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잘못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는 성장하면서 공평성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고, 결국에는 정의에 대해서까지 이해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이 이론에 대해 하이트는 ‘합리주의자의 망상’이라고 딱 잘라서 선언한다. 도덕성은 단순히 “피해”와 “공평성”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인간에게는 도덕적 직관이 먼저이고 전략적 추론은 그다음이라고 설명한다. “이성은 열정의 하인”이라고 얘기했던 18세기 영국의 계몽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을 인용하면서, 기수(추론 능력)가 코끼리(직관)를 시중들도록 인간의 마음이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키우던 개가 죽으면 먹는 다른 나라 사람들’,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진 남매’와 같은 ‘남에게는 무해하지만 금기를 위반한 사례’로 불리는 사례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하고 응답자의 도덕적 당혹감을 관찰한 실험을 수행하였다. 이를 근거로 사람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강하게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이 먼저이고, 그 느낌을 사수하기 위해 사후 정당화의 근거를 만들려고 안간 힘을 쓰는 경향을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저자는 이를 ‘사회적 직관주의자 모델’이라고 명명하였다.

 

인간이 어느 정도 선천적인 도덕성 직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느끼게 하는 기준으로, 앞서 언급한 “피해”와 “공평성” 기반 외에 다른 기준도 있는 것일까? 저자는 진화심리학적 이론과 여러 심리학적 실험들을 근거로 “충성심”, “권위”, “고귀함”, “자유”라는 항목을 추가하여 총 여섯 가지의 도덕성 기반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도덕성 기반을 이렇게 분류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은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이 도덕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여러 차원으로 확장한 것은 매우 인상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이 책을 집필한 이후에는 “정직”과 같은 다른 도덕성 기반의 후보들도 계속 찾고 있다고 하니 그 결과를 지켜보고 싶다.

 

하이트는 여기서 더 나아가 미국의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는 위의 여섯 가지 중 어떤 도덕성 기반을 중시하는지 인터넷 웹사이트 설문조사(YourMorals.org)를 통해 확인하였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여섯 가지의 도덕성 기반을 골고루 중시하는데 반해, 진보주의자들은 피해와 공평성 항목에 훨씬 강하게 반응하는 양상이었다고 한다.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 쓴 것처럼, 짧은 시간에 빈곤과 압제에서 벗어났지만 지역, 성별, 연령, 빈곤, 정치로 인해 사분오열된 대한민국에서 같은 조사를 한다면, 국민의힘당 지지자와 더불어민주당 지지자 사이에 어떤 차이가 나올지도 사뭇 궁금하다.

 

저자가 인간의 도덕성에 대해 마지막으로 주목한 점은 개인을 넘어선 집단적 차원의 도덕성이었다. 인간은 이기적인 영장류이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보다 크고 고결한 무엇의 일부가 되려는 열망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집단이 공격을 당하는 것과 같은 특정한 조건에서는 우리 안의 군집 능력을 활성화하는 스위치가 켜지기 때문에, 도덕은 사람들을 뭉치게도 하고 눈멀게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서약에 서명하거나 다짐하는 것만으로는 시간이 갈수록 갈등이 첨예해지는 미국 정치계의 문제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 진단했다. 그 보다는 정치인 선출 절차에 변화를 주거나, 정치인들이 상호작용하는 제도와 환경을 변화시킬 방법을 찾아서, 정치가 좀 더 교양을 갖출 것을 제안하였다.

 

<바른 마음>의 배경인 미국은 민주주의 정치의 선진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엉망이 되고 있는 미국 정치의 현실에 대한 저자의 안타까움과 걱정이 책의 끝까지 잘 표현되어 있다. 대한민국 의사의 입장에서는 우리나라의 의료와 관련된 정책 결정과 법안 논의에 있어서도 혼란스러운 정치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과학적 사실들을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자기편에게 유리한 근거들만 취사선택하는 모습들을 이번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서 너무나 자주 확인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상대편을 완전히 제압해버릴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여기서 잠깐, 그동안 인문학의 영역이라고만 생각했던 인간의 도덕성을 과학자의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자. <바른 마음>의 기수-코끼리 이론과 도덕성 기반 이론에 따라, 상대방의 코끼리를 움직이기 위해 머리가 아닌 가슴을 먼저 열고, 여섯 가지의 도덕성 기반 중 해당 논쟁에서 우리 편과 상대편이 가장 중시하고 있는 기반이 무엇인지 찾아보자. 그러면 어느덧 상대편의 말에 귀 기울이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고, 심지어는 논쟁거리를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여전히 의견은 하나로 모으지는 못한다 해도, 서로를 더 존중하는 관계로 발전해갈 수는 있을 것이다.

 

*상기 본문은 대한신경과의사회 회보 <신바람소리> 제6호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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