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노 서커스
전성기의 일본 애니메이션들은 세련된 디자인과 스토리라인도 인상적이었지만, 로봇과 비행기, 미사일 등의 움직임을 화려하게 연출한 액션씬들이 나를 포함한 소년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었다.
위 동영상은 에반게리온의 감독 안노 히데아키에 대해 설명해주는 '무비팬더'의 영상 중 하나인데, 4분 50초 부터 7분 14초까지 '이타노 서커스'에 대한 설명과 예시 장면들이 잘 나와있어서 가져왔다.
일본의 애니메이터 '이타노 이치로'는 링크한 동영상 썸네일 <전설거신 이데온>에서 '그림을 카메라가 찍는다고 생각하고 그려봐라'라는 조언을 듣고 카메라 앵글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메카닉과 이를 쫓는 미사일, 그리고 폭발 장면 연출을 마치 서커스 하듯이 화려하게 만들어서, 소위 <이타노 서커스>를 창시하게 된다.
'A와 B라는 물체가 있을 때, A가 B를 피해 움직인다 → A를 쫓기위해 B가 고속으로 움직인다' 같은 식으로, 가까이 있는 물체는 광각렌즈로, 멀리 있는 물체는 망원렌즈로 비춘 모습을 설정하고 그려진다. 이와 같은 묘사는 비장한 분위기 묘사에만 초점을 맞추던 종래의 전투씬에 익숙했던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마크로스 플러스>에서 '전설의 5초'라 불리는 장면까지 나오게 된다.
많은 업계의 후배들이 공중전, 전투씬에서 '유사' 이타노 서커스 기법을 연출했지만, 정작 이타노 이치로 본인은 이타노 서커스를 완벽하게 구사해내는 애니메이터는 자신 외에 안노 히데아키, 고토 마사미(카우보이 비밥), 무라키 야스시(교향시편 유레카 세븐), 세명 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고토 마사미의 카우보이 비밥
무라키 야스시의 이타노 서커스
안노 히데아키는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제작에 참여하면서 이타노 이치로에게 이타노 서커스 연출기법을 전수받게 되는데, 컴퓨터 CG 작업 없이 손으로 작화를 1컷당 1주일에 걸쳐서 그렸다고 한다.
디즈니와 픽사를 필두로 한 미국의 애니메이션과 비교하면 일본도 투자될 수 있는 자본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천재적인 애니메이터들이 기발한 작풍과 연출기법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타노 이치로 외에도 카나다 요시노리도 그런 애니메이터들 중 한명이다.
이렇게 잘나가던 일본 애니메이션도 시간이 갈 수록 그 발전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았는데, 최근에는 신카이 마코토라는 걸출한 감독이 나왔다.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같은 작품을 보면 참신한 스토리라인과 실사를 구현한 듯한 섬세한 배경 작화, 정교한 철도 장면, 빛을 활용한 풍경 및 소품 묘사, BGM 등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근일공개(近日公開)> 특보가 올라온지 한달이 다되가는 '신에반게리온극장판:ll'을 기다리면서 오늘도 이렇게 복습해본다.
(출처)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