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I의 발명과 뇌 과학 (feat. 마음의 미래)
오늘 다룰 주제의 출처는 미치오 카쿠의 <마음의 미래>란 책이다.
미치오 카쿠는 직접 자신이 "정신세계에 관심이 많은 이론물리학자"라고 얘기한다. 가장 친숙하면서도 낯선 우주, 즉 인간의 정신세계를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새로운 방향으로 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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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이 처음 발명된 후 우주시대가 도래하기 까지는 거의 35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지만, MRI가 발명된 후 두뇌와 바깥세계를 연결하는 데에는 겨우 15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발전이 빠른 이유 중 하나는 전자기학(electromagnetism)에 관한 이해가 과거 어느 때 보다 깊어졌기 때문이다.
뉴런을 통해 전달되는 전기 신호를 분석하려면 전자기학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전자기학의 모든 내용은 James Clerk Maxwell이 정리한 네가지 방적식으로 요약되며, 안테나와 레이더, 라디오 수신기, 마이크로파 송전탑, 그리고 MRI의 기본 원리 등은 모두 이 방정식으로 계산한 것이다.
전자기파의 한 종류인 라디오파(radio wave)를 생체 조직에 발사하면 아무런 손상 없이 가뿐하게 통과한다. 이 과정에 약간의 기술을 적용하면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했을 선명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육중한 크기의 MRI 장치 대부분은 원통 모양의 거대한 자기 코일이 차지하는데, 여기서 만들어지는 자기장은 지구의 자기장 보다 2만~6만 배나 강하다. 이 거대한 자석 때문에 MRI를 설치할려면 큰 공간이 필요하고, 한 대당 가격은 20억원에 달한다.
MRI는 인체에 유해한 이온을 방출하지 않기 때문에 X선 촬영기나 CT스캔 보다 안전하다. 다만, 자기장이 너무 강해서 MRI 전원을 켜기 전에 주변의 금속성 물체를 말끔하게 치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전원을 켰을 때 무거운 물체가 자석에 끌려 날아와 사람이 다칠 수 있다.
두 개의 대형코일이 에워싼 실린더 안에 환자를 눕히고 전원을 켜면, 기기 내부에 강력한 자기장이 형성되면서 환자의 몸을 구성하는 수소 양성자들이 자기장의 방향을 따라 일사불란하게 정렬한다. 여기에 약간의 라디오파 에너지 펄스를 가하면 수소 양성자의 일부가 반대방향으로 뒤집어졌다가 금방 원래 위치로 되돌아 오는데, 이 과정에서 두번째 라디오파 에너지 펄스가 방출된다.
두 번째 펄스, 즉 라디오파의 메아리 신호를 분석하여 각 원자의 위치를 데이터로 변환하고, 이 데이터를 컴퓨터로 보내면 스크린에 두뇌의 영상이 나타나게 된다.(스핀에코 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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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MRI는 두뇌 각 부위의 정적인 구조만 촬영할 수 있었으나, 1990년대 중반, '기능적 MRI(functional MRI, fMRI)'가 개발되었다.
MRI는 뉴런에 흐르는 전기 신호를 직접 촬영할 수는 없지만, 뉴런에 에너지가 공급되려면 산소가 반드시 있어야 하므로, 혈액 속 감소하는 환원헤모글로빈(reduced hemoglobin)의 자성에 영향받은 수소 양성자를 추적하여, 어떤 자극을 주고 반응하는 두뇌의 다양한 부위들이 상호 작용하는 패턴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fMRI의 이러한 특성을 이용하여 생각의 경로를 추적하면 두뇌 지도 작성(brain mapping) 뿐 아니라,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정신분열증 등 다양한 신경질환의 원인과 치료법을 찾아내는데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두뇌를 이루고 있는 물질의 다양한 성분들은 반복되는 라디오파 펄스에 대해 다르게 반응한다. 따라서 라디오파 펄스의 반복 시간을 바꿔주거나, 시간 차를 두고 90도 각도의 고주파 펄스를 가하거나, 수소 양성자가 방향을 바꾸면서 나오는 에코 영상 획득 시간을 다르게 해줌으로써, 두뇌 안의 특정 구조나 특정 병변이 뚜렷하게 나오는 영상을 얻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방법으로, 고식적인 T1, T2 강조 영상, 확산강조영상(diffusion weighted image, DWI), 경사에코(gradient echo, GRE)기법 또는 액체감약반전회전(fluid attenuated invertion recovery, FLAIR)기법 등이 실제 임상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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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들어서는 두뇌 안 물 분자의 확산 현상을 추적하여 뇌의 신경 섬유를 그려낼 수 있는 '확산텐서영상 MRI(diffusion tensor imaging MRI, DTI)'이 가능해졌다. DTI를 이용하면 뇌의 신경구조를 선명한 사진으로 볼 수 있으며, 신경 섬유의 발달과 퇴행 과정을 확인하고, 구조에 따른 뇌의 기능도 알아낼 수 있다.
그러나 아직 DTI는 시간적 해상도가 높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찍을 수 있는 영상이 1프레임 당 1초에 불과하여, 이보다 훨씬 빠른 뇌 속의 전기신호를 영상으로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관련된 구체적인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
DTI가 두뇌 각 부위의 상호 연결관계를 판독하여 뇌의 구조적, 기능적 지도를 작성하는(brain mapping) 연구적 목적에서 쓰일 뿐 아니라, 임상에서 뇌 신경계 질환의 진단과 치료에 쓰이려면 남아있는 문제점들이 좀 더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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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속 각 부위의 기능을 알게 해준 MRI는, 우주에 존재하는 네가지 기본적인 힘(중력, 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 중에서, 지난 150여 년 동안 집중적으로 연구한 전자기력에 기초한다.
시간이 지날 수록 크기가 작아지고 가격이 떨어지면서 MRI도 널리 보급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물리학자들은 MRI를 휴대전화 크기로 줄이기 위한 계산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다.
그 외에 영상의 공간 해상도와 시간 해상도를 높이는 것도 문제이다. 자기장이 지금보다 더욱 균일해지고 전기장치의 감도가 향상되면 MRI 영상의 픽셀을 좀 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산소나 물 분자 처럼 신경세포의 활성도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물질이 아니라, 신경세포를 활성화하는 직접적인 물질(예를 들면 Na이온)을 추적하면 인간의 사고과정을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지난 15년 동안 뇌 과학은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지만, 장비의 성능으로 볼 때는 아직은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신비로운 뇌를 탐험하는 우주선이라 할 수 있는 MRI가 획기적으로 발전한다면, 우리는 의식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