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콜과 비타민 결핍, 그리고 치매
알콜 의존증을 묘사한 생택쥐베리 <어린왕자>의 한 장면이다.
인간은 아주 오래된 과거에 우연히 곡식에서 발효된 알콜이 쾌감을 주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후 인간의 역사에서 술은 사회 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기호품이었지만, 과도한 탐닉이 신체적, 정신적인 문제를 가져온 것도 알콜의 큰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대한민국의 알콜 의존증 환자는 200만명에 이르고 음주에 대해 너그러운 사회적인 분위기로 인해, 알콜 의존증과 관련된 합병증도 많은 편에 속한다.
알콜 의존증과 관련된 합병증 중에서도, 여기서는 흔히 '알콜성 치매'라고 불리는 상태에 대해 리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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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와 20세기 초에 선박 건조 기술의 발달로 장기간 육지의 식사가 끊기게 되는 선원들에게 각기병, 괴혈병과 같은 질병들이 생기게 되었고, 이때 현미, 보리 혼식과 과일을 주었더니 좋아지던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20세기 초 에이크만, 홉킨스 등 의사와 생화학자들이 인간에게는 3대 영양소 외에 소량이지만 꼭 필요한 영양소가 있음을 밝혀냈고, 폴란드의 생화학자 카시미르 풍크는 쌀겨에서 아민 성분을 찾아내고 이를 비타민이라고 명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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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콜 의존증이 지속되고 심해진 환자들은 점점 더 일반적인 식사량이 줄어들고 말그대로 술만 마시게 되는데, 이 때 티아민(thiamine)이라는 비타민 B1이 고갈되게 된다.
비타민B1, 티아민은 주로 정제되지 않은 곡물, 씨앗, 콩류, 정육, 생선 등에 함유되어 있고, 포도당 대사 및 특히 신경과 근육 세포의 기능 유지에 중요하다.
건강한 성인에게 하루 필요량은 1~2mg 정도인데, 체내 총 저장량은 30~50mg 정도라 섭취가 안되면 4~6주 정도에 티아민 결핍 증상이 나타나고, 장시간 바다에 있는 선원에게 나타났던 각기병(beriberi), 알콜 의존증 환자에게 잘 나타나는 베르니케 뇌병증(Wernicke encephalopathy)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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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환자의 가족들이 병원으로 환자를 모시고 와서,
"우리 아빠가 옛날 부터 맨날 술만 마시고 식구들과 사이도 안좋아서 따로 떨어져 살았어요. 혼자 사시면서도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아요.. 오랜만에 혹시나 해서 댁에 찾아가봤더니 밥도 안먹고 술만 마셨더라구요. 그런데 잘 걷지도 못하고, 엉뚱한 소리만 하셔서 이렇게 병원에 모시고 왔어요."
이렇게 말씀하시게 된다.
그래서 신체 검사, 신경학적 검사를 해보면, 이야기를 지어내는 작화증을 동반한 기억력 저하, 신체의 균형을 못잡고 손/발의 방향이 흔들리는 운동 실조증(ataxia), 주로 눈모음이 잘되지 않는 안구운동장애가 나타난다. 이를 베르니케 뇌병증의 3대 증상이라고 한다.
추가 검사로 혈액 내 비타민B1 수치가 떨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고, 뇌 MRI를 찍으면 뇌실 주변 시상(periventricular thalamus), 유두체(mamillary body), 수관 주위 회색질(periaqueductal gray matter)에 고신호 강도가 나온 것을 볼 수도 있다.
이렇게 진단을 하면 티아민을 정맥 주사하고 포도당을 보충하게 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포도당만 먼저 주게 되면 포도당이 대사되면서 그나마 남아있는 티아민을 더욱 고갈시키면서 증상이 더욱 나빠지게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치료를 받기 위해서 입원을 하고 술을 끊게 되면서, 금단 증상이 시간에 따라 빈맥, 발한, 수전증, 섬망, 환각 증상들이 순차적으로 나타나게 되고, 이를 진전섬망(delirium tremens)라고 한다. 이에 대한 치료로는 디아제팜, 아티반과 같은 벤조디아제핀 약물을 쓰게 되지만, 노인들에게는 이런 안정제에 의한 부작용도 있고, 진전섬망 자체의 사망률도 5~20% 정도라 정말 주의해야 한다.
베르니케 뇌병증은 티아민을 투여하면 증상이 완화되는, 즉 가역적인 질병이다. 그러나 진단과 치료가 늦어지면 치료가 되지 않는 비가역적 기억 손상, 흔히 얘기하는 알콜성 치매, 코르사코프 증후군(Korsakoff syndrome)으로 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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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를 진단하는 것은 어떤 특수 장비로 결과를 바로 뚝딱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급성 알콜 중독, 두부 손상, 노인성 치매 등 다른 치매의 원인 질환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고, 실제로 부검 결과와 비교했을 때 많게는 80%까지 진단에 실패했다는 보고도 있다.
의사가 환자에 대한 가족들의 진술을 잘 듣고, 신체 검사, 신경학적 검사를 면밀히 함으로써 올바른 진단과 치료를 최대한 빨리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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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알콜 의존증과 비타민, 관련된 치매 증상에 대해 알아보았다.
개인적으로 적당한 음주는 즐기는 편이지만, 많은 환자들이 술에 의해 정신적, 신체적인 문제가 동반된 것을 볼 때 마다 경각심을 가지게 된다.
높은 자살률로 고민하던 핀란드는 술을 판매 제한함으로써 자살을 감소시켰다고도 한다.
(관련기사: http://news.mt.co.kr/mtview.php?no=2015100713477643841)
사회, 경제적으로 술의 판매 제한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이 좀 더 건강한 사회로 변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논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