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도 의사로 살아남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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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환자를 보고 얻게 된 정보를 바탕으로 특정한 질병을 진단하거나 치료법을 선택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지식이 사용되고 왜 그렇게 판단하는지 큰 흐름은 설명할 수 있지만, 정말 자세한 부분까지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다. 의사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복합적인 지식과 경험을 사용하기 때문에 모든 경우를 규칙으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때는 의사들의 진단법과 치료법을 규칙 형태로 프로그래밍해 컴퓨터에 입력하고 이를 이용해 병을 진단하는 시스템이 개발된 적도 있었지만, 실제 의사의 판단과 차이가 많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곧 한계에 부딪치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는 신경망 이론이 접목된 인공지능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복잡한 판단 과정을 수행하는 의사 본인도 모르는 원리를 기계가 학습을 통해 알아내기 시작했다. 기계가 단순하게 프로그래밍된 판단 과정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오랜 경험으로 얻은 지식을 기계가 흉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을 따라하는 기계를 우리가 대중적으로 알게된 것은 2016년 이세돌을 바둑에서 이긴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였다. 바둑을 두는 사람은 기본적인 기보를 익히고 이를 토대로 다른 사람과의 대국을 반복하여 기본 기보들을 응용하고 발전시키게 된다. 바둑기사는 이 과정에서 기존 기보를 해석하고 정리하여 자신의 패턴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을 알파고는 수없이 많은 기보들을 '날 것의' 데이터(raw data) 형태로 반복적으로 학습하는 방식을 거침으로써, 바둑기사 본인도 설명하지 못한 패턴을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 바둑기사가 딱 보면 그 자리에 바둑돌을 두는 직관을 인공지능이 얻게된 것이다. 우리는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보면서, 인공지능이 바둑에서의 직관에 있어서 만큼은 인간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존의 컴퓨터가 정해진 함수에 따라 결론을 내리는 일종의 연역적 추론을 하는 방식이었다면, 신경망 인공지능을 이용한 알파고는 딥러닝이라 불리는 기계학습을 통해 습득한 다양한 사례를 보고 결론을 내리는 귀납적 추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귀납적 추론은 다양한 사례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오류가 있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지만, 기존의 법칙과는 다른 결론, 즉 창의적인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직관은 이런 창의적인 결론을 만들어내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었는데, 신경과학자들은 인간의 직관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귀납적 추론이란 것을 알아냈고, 공학자들은 이를 머신러닝에 적용시킴으로써 새로운 방식으로 작동하는 인공지능을 만들어낸 것이다.
기계학습을 통해 AI의 귀납적 추론 능력이 계속 발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기계에게는 직관 능력이 아직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인간은 한번 본 사람을 다음에 보면 바로 알아볼 수 있고, 다른 각도로 그 얼굴을 봐도 알아볼 수 있지만, 인공지능 기계에게는 아직 쉽지 않은 능력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표정과 말투, 행동, 입고 온 옷 등을 보고 그 사람의 기분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지만, 기계는 아직 알아챌 수 없다.
기계가 인간과 비슷한, 또는 인간을 뛰어넘는 직관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기계가 학습할 '날 것의' 정보 양이 많으면 많을 수록 더 똑똑해진다. 이전에는 어색했던 구글의 외국어 번역이 최근에는 그래도 읽어줄만한 수준으로 발전한 것은 우리가 자고 있는 동안에도 번역의 사례가 수백만개, 수천만개 이상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의 영역에 있어서도 의사의 직관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건강과 질병, 임상 현장에 관련된 온갖 종류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핵심이다. 앞으로 5G와 가상현실(VR), 사물인터넷(IoT)가 더욱 발전하게 되면, 인간의 삶과 연관된 데이터를 모으는 것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빨라지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로 더욱 강한 직관을 가지게된 인공지능 의료 알고리듬은, 고혈압/당뇨와 같은 생활습관과 관련된 만성질환자들의 약물 처방과 같이, 휴먼 의사가 하는 진료 중에 가장 위험성이 적고 단순한 작업부터 적용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래서 미래 의료에 관심이 높은 정부 부처와 빅테크 기업들은 만성질환에 연관된 식습관, 운동, 라이프스타일, 처방 약물 등의 데이터를 수집하고자 혈안이 되어있고, 의사와 의료기관에서 자신들이 만든 플랫폼에 이 '날 것의' 데이터들을 변환하여 입력해주기를 요구하고 있다.
데이터의 수집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기계가 휴먼 의사만큼의 직관을 가지게 될 날이 결국에는 오겠지만, 상술한 바와 같은 과정을 거칠려면 시간이 아직은 더 걸릴 것이다. 그동안 휴먼 의사들은 기계가 아직 완벽하게 갖지 못한 '직관'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치매 환자를 진료하는 신경과의사가 진료실 밖으로 자신의 직관을 확장시키는 것을 상상해보자. 신경과의사는 해부학과 조직학에서 인간의 뇌와 다른 동물의 뇌의 차이, 뇌의 국소성, 뉴런과 신경망, 뉴런의 가소성 등에 대해 다른 사람들 보다는 조금 더 잘 이해하고, 조금 더 편안하게 이 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생리학과 생화학에서는 신경 전도와 시냅스, 신경전달물질에 대해서, 병리학과 분자생물학에서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치매의 원인과 치료법에 대해 그럴 것이다.
신경과의사의 직관을 의학의 범위를 넘어서도 확장시킬 수 있다. 물리학, 컴퓨터 공학, 프로그래밍, 나노공학 등에서는 치매와 관련된 MRI, EEG, PET 등 첨단 검사 기기의 원리, 그리고 우리가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신경망 인공지능의 원리에 대해 남들 보다는 좀 더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DNA 메모리, 양자컴퓨터, 나노봇 등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내용에 관해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인문학으로 그 범위를 넓혀보면, 사회복지학, 행정학, 정치학, 법학에서 다루는 치매 환자의 돌봄과 치매 환자의 인권, 성년 후견인 제도 등에서 신경과의사로서의 견해를 밝힐 수 있다. 그리고 인간 의식과 자유의지, '나'란 무엇인가? 등 철학, 종교와 관련해서도 나름의 해석이 가능하다.
이렇게 학문의 영역을 넘어서 습득한 지식과 자신의 임상 경험을 융합시키면 그동안 세상에 없던 그 '신경과의사만의' 융합 컨텐츠가 만들어질 것이고,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한 기계라도 이런 컨텐츠는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만들어낼 수 없다. 대한민국의 의사들은 아직 이런 컨텐츠를 활발하게 만들지 않고 있지만, 이미 외국의 인류학자와 물리학자 등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런 융합 컨텐츠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유발 하라리와 미치오 카쿠 같은 저술가들이 바로 그런 전문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