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와 자유의지
우여곡절 끝에 다다른 ‘소스’의 문 앞에서, ‘네오’는 죽어가는 ‘키메이커’에게 소스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받아 문을 열게 된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눈부시도록 환하게 빛나는 소스로 들어가면서 네오는 생각한다.
“여기에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던가. ‘오라클’이 이유도 안 알려주고, 소스에 가야한다고 해서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온 것일까?“
소스 안에 들어가니 그 곳은 네오를 비추는 수많은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는 방이었고, 방안 가운데 의자에 앉아있는 흰 정장을 입은 백발의 노인이 마치 네오를 기다렸다는 듯 맞아준다. ‘아키텍트’라고 자신을 소개한 노인은 ‘매트릭스’의 진실과 인류가 처한 상황, 네오가 결정해야할 선택지를 알려준다...
-영화 <매트릭스 리로디드>의 한 장면
화려한 액션 장면과 내재된 심오한 철학으로 큰 흥행을 일으켰던 SF영화 <매트릭스>시리즈에서는 주인공 네오의 선택이 영화 전편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네오는 모피어스가 양손에 올려놓은 빨간 약과 파란 약 중 한가지를 선택해야 했고, 소스에서 만난 아키텍트가 제시한 오른쪽 문과 왼쪽 문 중에 한가지를 선택해야 했다. 네오는 빨간 약을 먹음으로써 매트릭스 프로그램을 거부하고 현실 세계로 탈출할 수 있었고, 왼쪽 문을 선택함으로써 사랑하는 트리니티의 생명을 구하지만 인류는 종족 말살이라는 큰 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처럼 인간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오늘 점심 식사로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와 같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다가오는 선거에서 어느 후보에게 투표할지와 같은 중요한 것까지, 우리는 이 모든 선택을 자신의 ‘자유의지’로 결정한다고 당연하게 믿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받고 특별한 존재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뇌를 다친 사람을 상상해보자. 뇌의 손상 부위에 따라 동물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별다른 생각 없이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색을 구별하지 못할 수도 있다. 또 치매에 걸린 노인을 상상해보자. 과거에는 너무나 친절하고 다정했으며, 지혜로웠던 남편이 지극히 사랑하던 아내에게 욕을 하고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무한한 상상력, 창의성, 가능성을 가진 인간의 의식은 이처럼 뇌라는 물질화된 신체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것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생명체도 입자라는 물질들의 집합체일 뿐이라는 관점으로 인간을 바라본다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생각과 욕망, 희망, 그리고 우리가 매일 결정하는 수많은 선택들조차도 뇌 안에 흐르는 전기신호일 뿐, 우리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뇌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할 수 있다.
자유의지의 존재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한 가장 유명한 실험은 벤저민 리벳(Benjamin Libet)의 실험이다.
리벳은 피험자들에게 "시계를 보다가 손가락을 움직이기로 마음먹을 때 움직여주세요."라고 부탁하고, 뇌파검사(EEG)를 통해 뇌가 결정을 내리는 순간을 측정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두뇌가 결정을 내린 시간이 피험자가 마음먹은 시간보다 0.3초 정도 빨랐고, 어떤 피험자는 1초 정도 빠르기도 했다. 즉, 뇌는 의식이 알아차리기 전에 이미 결정을 내렸고, 그 직후에 마치 의식이 결정한 것처럼 우리는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론도 있었다. 결정하기 전에 나타난 뇌 활동의 시간 간격이 너무 짧아서 결정 이전에 확인된 뇌 활동은 결정을 위한 준비이지 않겠냐는 지적이었다. 그런데 2007년에 이 논란을 종식시킬만한 연구가 나왔다.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뇌과학자인 존-딜란 하인즈(John-Dylan Haynes) 교수는 더 발전된 방식의 실험을 수행했다. 연구팀은 기능적MRI(fMRI)로 뇌 활동을 확인하면서, 피험자에게 자신이 원할 때마다 결정을 내려서 양손 중 한쪽의 버튼을 누르게 하고, 자신이 어떤 버튼을 누를지 결정했을 때를 모니터에 시간별로 바뀌는 알파벳으로 확인해주도록 했다.
하인즈 실험의 결과도 리벳의 실험 결과와 합치했다. fMRI를 통해 피험자가 어느 손으로 버튼을 누를지도 예측이 가능했고, 피험자가 특정 버튼을 누르기 최대 10초 전에 뇌의 특정부위가 먼저 활성화됨을 확인한 것이다. 리벳 실험에서는 최대 1초였는데 하인즈 실험에서는 10초라니, 이 정도 시간 간격이라면 인간이 순간적으로 자유로운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뇌가 주인에게 일으키는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자유의지는 정말로 존재할까? 우리는 삶의 주인일까?
양자역학을 태동시킨 슈뢰딩거는 1944년 그의 책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물질과 생명체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였는데, 인간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원자들의 운동’을 조절하는 생명체라고 하였다. 당시에는 자신의 감정이나 선택이 자유의지의 결과라 믿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지만, 슈뢰딩거는 이러한 자유의지가 생화학과 뇌과학의 결과를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무엇이든 자신의 뜻대로 한다고 생각하지만, 뇌는 이미 결정된 수천 가지 요인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과학적 사실인 것이다.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유전자나 뉴런보다 더 깊은 곳에 진정한 나 자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선택은 내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고, 누구도 내 선택이나 의지를 예측하거나 조종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기독교적 세계관에 의해, 아니면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자유주의에 대한 믿음을 강하게 가진 독자들은 이렇게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행히도 과학적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신경과학자들은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는 더 많은 실험적 증거들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과거 자유주의는 편협한 종교와 억압적인 정부로부터 우리 개인의 독립성을 지켜낼 수 있는 훌륭한 논리와 제도를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생각과 의지가 뇌의 기능을 벗어나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과학적 사실을 인정해야한다. 지금은 기업과 관료, 정치인이 인간의 선택을 예측하고 조종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내고 활용할 수 있는, 즉 우리의 뇌를 “해킹”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가장 영리한 사람들은 우리들의 선택을 예측하고 조종할 수 있다. 우리들이 스마트폰으로 선택하는 기사를 통해 인공지능으로 맞춤화된 광고를 보게 만들어 물건을 사게 하고 있다. 물건 뿐 아니라 섬세하게 만들어진 알고리즘으로 특정 의도를 가진 정치인과 이념으로 자신도 모르게 우리를 인도할 수 있다.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던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이제는 어떤 인공지능이나 알고리즘보다 나 자신을 알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앞서 자유의지 신화의 시대에는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자유를 추구했고, 우리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든 간에 이 욕망과 생각이 자유의지의 결과라 믿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왜 이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라고 되물어야 한다.
영화 <매트릭스 리로디드>에서 네오는 ‘소스’에서 왼쪽 문을 선택한다. 위험에 처한 사랑하는 트리니티를 구하기 위해 인류 멸종의 위험을 감수하게 된다. 이전의 네오들은 ‘시온’이 기계들에 의해 파괴되더라도 시온을 재건할 남자 16명과 여자 7명을 선택하면 인류 종족을 유지할 수 있었기에 오른쪽 문을 선택했지만, 주인공인 6번째 네오는 뇌 속 화학 반응이 촉발시킨 ‘사랑’이란 감정으로 그들과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매트릭스를 설계한 ‘아키텍트’는 자신의 예상과 다른 선택을 한 네오를 탐탁치 않은 눈빛으로 바라본다.
이제는 자유의지에 대해 우리가 가진 환상을 의심해보자. 자유의지라는 환상 뒤에 도대체 무엇이 있는지 탐험하자. “이건 내가 아니야. 그저 뇌의 생화학적 변화일 뿐이야.”라고 나의 생각과 욕망을 의심하면, 그제야 비로소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정말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정하기 힘든 사실이지만, 여기서부터 뇌과학과 함께 여행을 시작해보자. 이 여행을 통해 우리는 인공지능과 알고리즘, 생체공학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도 언제까지나 내 삶의 주인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