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뇌과학
인간의 삶과 죽음을 목격하는 신경과의사인 나에게, 나 자신과 우주의 근원은 아직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다. 우리의 몸은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로부터 만들어진 원자들로 이루어졌고, 우리의 어깨 위에 있는 두뇌는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물체이며, 우리는 이 두뇌를 이용하여 우주의 법칙과 자신의 존재 기원을 탐구하고 있으니,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의식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우리의 뇌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등 아직 풀지 못한 근원적인 질문들의 답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만물을 이해하는 방법인 과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실제로 생리학, 생화학, 분자생물학이 세포와 분자 단위에서, 전자기학과 양자역학이 원자와 아원자 단위에서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생명 현상의 신비를 풀어줄 힌트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과학을 이용하여 인간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존재 기원을 찾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과학에서는 새로운 실험 결과와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올 때마다, 그 전에는 그저 ‘신비했던 현상’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리고 이 ‘합리적 사실’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인문학과 예술의 소재가 되고, 다시 과학에서의 새로운 아이디어로 인간의 문화 전반을 넘나들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뇌과학‘이라는 주제를 선택한 것은, <코스모스>의 칼 세이건, <초공간>, <마음의 미래>의 미치오 카쿠와 같은 과학저술가들에게 많은 감명과 영감을 얻었기에 가능했음을 밝히고 싶다. 이들 과학저술가들은 나에게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물리학적인 관점을 바라볼 수 있는 창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물리학을 통해 우리는 인간을 물질적인 관점에서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신체를 구성하는 기본 구성단위를 세포 수준에서 바라보던 고전 생물학의 관점에서, 분자와 원자라는 보다 작은 입자 단위까지 쪼개서 볼 수 있는 지평이 넓어지게 된 것이다.
우리의 몸을 생명체가 아닌 입자라는 물질의 집합체로 치환해서 바라보면, 인간은 섭취한 음식들을 우리 몸의 세포 내에서 원자 단위로 재배열하여 피부, 뼈, 장기와 같은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진 물질로 변환시키는 일종의 기계와도 같다. 그리고 여기서 일어나는 수많은 현상들, 즉 많은 원자들이 모여서 만든 정보 전달체인 핵산이 DNA를 구성할 때 발생하는 전자기력 현상, 감각과 운동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세포에서 발생하는 활동전위(action potential) 현상, 시각과 후각 정보를 인식할 때 일어나는 양자현상 등을 우리는 물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물리학이 인간에 대한 이해를 엄청나게 넓혀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의식만큼은 물리학이라는 최첨단 현미경으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다. 물론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물리학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MRI(자기공명영상)와 같은 혁신적인 검사 장비와 신경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우리는 두뇌의 구조와 각 부분이 담당하는 기능, 신경세포 단위에서 일어나는 전기 현상, 신경 전달 물질의 역할, 신경의 가소성(plasticity)과 같은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알아낸 중요한 사실들을 종합하자면, 인간의 의식은 신체의 일부분인 두뇌와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또 그것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두뇌가 바로 우리 의식의 근원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직 두뇌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우리는 전혀 갈피를 못잡고 있다. 두뇌의 해마가 두뇌의 기억저장장치라는 것은 알았지만 해마의 신경세포들은 2진법을 사용하는 트랜지스터도 없이 어떻게 정보를 저장하는지 아직 우리는 알아내지 못했다. 왼쪽 측두엽의 윗부분 고랑(gyrus)은 감각성 언어중추(베르니케 중추)라 불리는데, 이곳이 손상을 받으면 우리는 귀로 듣는 언어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지만, 여기 있는 신경세포들이 어떻게 외부에서 들리는 수많은 소리 중에 언어를 구분해내고 이를 특정 의미로 연결시키는지 우리는 모른다.
우리를 더욱 낙담하게 하는 것은, 어떻게 연구해야 이런 비밀들을 알아낼 수 있는지도 아직 모른다는 점이다. 우리 두뇌의 신경망을 모두 추적하여 두뇌 지도를 만드는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우리는 두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 있을까? 아니면 뇌의 뉴론(neuron, 신경세포)에서 일어나는 전기 현상을 1플랑크 길이보다 작은 미시계까지 철저하게 환원주의적으로 관찰한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우리의 의식을 연구하다 보면 결국, 도대체 ‘나’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의 신체는 입자들로 만들어진 기계와 다를 것 없는데, 이 신체는 ‘나’의 의식 활동에 의해 자연의 물리 법칙이 허용하는 한에서는, 엔트로피의 반대 방향으로 특정 운동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백하게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아닌 것’과 구별되는 ‘나’를 우리는 분명히 느낄 수 있다. ‘나’에게는 욕망, 희망과 희노애락의 감정이 있고, ‘나’는 타인에 대한 유대감, 애정, 미래에 대한 계획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과거에는 이런 ‘나’를 종교에서는 ‘영혼’으로, 철학에서는 ‘실존’으로 설명했다. 그런데 물리학적 관점으로 ‘나’를 보다 세밀하게 분석하자면, ‘나’는 경험과 기억이라는 과거의 ‘정보’들이 캔버스에 그려져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또 다른 새로운 정보들이 쌓여가는 바탕 그림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 캔버스가 바로 우리의 두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