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의사파업, 20년 전과 다른 점 7가지
의료전문지<청년의사> 박재영 편집주간의 오늘자 칼럼을 가져왔다.
https://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2082
박재영 편집주간은 과거 MBC에서 드라마화되었던 <종합병원>의 공저자로, 연세대 의대를 졸업했지만 임상 의사를 하지 않고, 언론인이자 작가로서 의사와 환자의 간격을 줄여주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번 의사들의 파업에 대해 2000년 의약분업 이슈로 일어났던 의사들의 파업 투쟁과 비교하여 칼럼에 잘 정리하였다. 인상적인 부분을 아래에 발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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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정책의 명분이나 합리성 측면에서도 2000년보다 훨씬 못하다. 의약분업은 워낙 논의 기간이 길었고, 의약분업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는 별 이견이 없었다.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고, 아직도 못 하고 있는 게 비정상적이라는 것에는 충분한 공감대가 있었다. ‘어떻게’ 하느냐에 있어서도 선택의 문제가 있었을 뿐, 각각의 선택지의 구체적 모델이나 장단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서로 할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정원을 400명 늘리는 것과 지역의 의료공백을 메우고 특수 분야 의사와 의과학자를 확충하는 것이 서로 어떻게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가 없다. 대학 입시에서부터 아예 별도로 선발한다는 계획인 모양인데, 자유로운 미래가 보장된 의대생들과 ‘지역 근무 10년’이라는 특별한 조건이 붙어 있는 ‘지역의사 후보생’들이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데 따르는 문제는 없을까? 지역의사 전형을 통해, 필시 일반전형보다 낮은 커트라인을 통과하여 의대에 합격한 학생들이 지역 의료를 책임진다는 숭고한 사명감을 갖게 될까 아니면 ‘2류 의사’가 될 ‘2류 의대생’이라는 콤플렉스를 갖게 될까. 그들이 지역에서 10년간 일한다고 해도, 사명감으로 기쁘게 일하는 사람과 국방부 시계를 쳐다보듯 대도시로 나갈 날짜만 기다리며 일하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많을까. 게다가 그 지역의사들의 일자리는 누가 어떻게 만들 건데? 각자 대출 받아서 개업하라는 건가? 인구가 자꾸 감소하는 지역에 병원을 열었다가 망하면 누가 책임질 건데? 공공병원 확충? 말은 많이 했으나 수십 년 동안 공수표였다.
특수 분야나 의과학자 의사 확충은 더 이해가 안 간다. 특수 분야는 대부분 가장 높은 수준의 전문성과 가장 긴 시간의 수련을 필요로 하고, 의대를 다니고 수련을 받는 과정에서 해당 분야에 매력을 느껴 투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고교 졸업생 중에서 소아외과나 흉부외과나 외상외과나 감염내과 등을 전공할 사람을 미리 선발한다고? 그건 좀 이상하지 않나. 별도의 정원으로 ‘의과학자 후보생’을 따로 뽑는 게 얼마나 웃긴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들 중에서 정말 노벨상급 연구자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가? 주요 대학 수석 졸업자들이 연구자에겐 미래가 없다고 피부과나 성형외과에 지원하는 현실에서?
설마 선발할 때는 조건 없이 400명을 더 뽑고, 해당 분야 티오만 늘린다는 건가? 지금도 티오가 안 채워지는데, 늘린 티오가 안 채워지면 강제로 배치할 건가? 무슨 수로? 공산주의 국가도 아닌데 의사국가고시 하위 10%는 지역으로 보내고 상위 1%는 기초과학자 코스로 보낼 건가? 이런 의문에 대해 정부가 아무 말도 안 하는 걸 보면, 정부도 답이 없는 거다. 안 될 거라는 걸 아는 거다. 갑자기 정부가 여기에 꽂힌 이유는 모르겠지만 전체 의사를 좀 늘리고 싶은데, 그냥 늘린다고 하면 명분이 약하니 지역의사, 특수분야 의사, 의과학자 양성이라는, 현실성 없는 명분을 갖다 붙인 건 아닐까. 10년쯤 지난 후에 여전히 소아외과 의사가 부족하면 또 의사들의 탐욕 탓으로 돌리면 된다는 계산까지 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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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의사들은 2000년의 의료대란을 통해 강제로 사회화되었고, 그 이후에 의대에 입학한 젊은 세대들은 의사가 교과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교육을 받았다. 의사도 수많은 직업 중의 하나일 뿐이라 생각하고, 의사-환자 관계나 학생/전공의-교수 관계도 하나의 계약관계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슬픈 사실이지만, 2000년의 의사들이 했던 ‘의사가 이런 행동을 하면 환자들의 신뢰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2020년의 의사들은 상대적으로 덜 한다. 이유야 뭐가 됐든, 공연히 폼 잡다가 호구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욕먹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20년 전보다 늘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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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부는 다른 대책은 거론하지 않으며 오로지 의사를 늘리겠다는 방안만 내놓았고, 그들이 ‘지역의사 300명과 특수 분야 및 의과학자 100명’이 될 것이라는, 도대체 뭘 어떻게 해서 그리 된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그 와중에 ‘한방 첩약 급여화’라는, 의사라면 누구도 동의하기 힘든 정책까지 함께 추진하고 있다. 파업하라고 부추기는 꼴이다.
정부 관계자들이나 정치인들이 의사들을 불필요하게 자극하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참을 인자 세 번 쓰고 나왔다’, ‘의사는 공공재’ 발언은 압권이었고, ‘의료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다’는 장관의 말, ‘어떤 타협도 없다’는 집권당 대표의 말, ‘공권력의 엄정함을 세우겠다’는 대통령의 말도 젊은 의사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평소 의사들을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정부 지시를 따라야 하는 부하로 생각한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굳이 이렇게 자극할 필요가 있나. 2000년에도 고위 관료나 정치인들이 헛소리나 거짓말만 좀 덜했어도 일이 그 지경까지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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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의사파업의 경과와 결과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다. 지금의 의사파업이 어떤 경로를 밟아갈지 궁금하다. 열쇠는 정부가 쥐고 있다. 부디 2000년의 의사파업과 현재의 의사파업이 똑같다고 생각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지금은 그때와 여러 면에서 다르다.
(칼럼 본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