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 원리와 인류 원리
과학은 블랙홀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멀리 떨어진 행성을 탐사하면서 '코페르니쿠스 원리(Copernican principle)'와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라는 두 가지 철학을 탄생시켰다.
코페르니쿠스 원리는 400여년 전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측하면서 탄생했다. 이 원리에 의하면 한때 우주의 중심으로 여겨졌던 지구는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질 때마다 변방으로 밀려났고, 이에 따라 인간도 우주에서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존재가 되었으며, 지난 수천 년 동안 명맥을 유지해오던 온갖 신화와 철학을 완전히 무색하게 만들었다.
갈릴레오는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하다가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로부터 약 300년 후, 천문학자들은 우리의 태양계가 우리 은하(milky way galaxy)라는 거대한 회전은하의 한 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1920년에 허블은 우주에 은하의 무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그의 이름을 딴 허블 망원경이 보내온 자료에 의하면 관측 가능한 우주 안에는 약 1천억 개의 은하가 존재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최근의 '인플레이션 우주론'에서는, 약 1천억 개의 은하로 이루어진 우리 우주는 이보다 훨씬 큰 '팽창하는 우주'의 한 점에 불과하다. 원래의 우주는 너무 방대하여, 빛 대부분은 아직 지구에 도달하지도 않았기에 우주 대부분은 망원경으로 관측할 수 없으며, 빛보다 빠른 이동수단이 발명되지 않는 한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곳을 방문할 수 없다.
아직 증명되지 않았지만, 이론물리학의 '끈이론'이 옳다면, 우리는 3차원이 아닌 11차원 초공간에 살고 있으며, 그 속에는 여러 개의 우주가 공존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3차원 공간이 전부가 아니며, 물리적 현상이 일어나는 배경은 유니버스(UNI-verse:하나의 우주)가 아니라, 거품우주로 가득 차 있는 '멀티버스(MULTI-verse:다중 우주)'라는 것이다.
...
이에 반해, 인류 원리는 "우주는 생명체에 호의적이다."라고 주장한다. 신기하게도,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힘은 생명이 탄생하고 살아가는데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세기로 작용하고 있다.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Freeman Dyson)은 "우주는 우리가 이 세상에 등장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핵력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강했다면 태양은 이미 수십억년 전에 다 타서 사라지고, DNA는 전혀 생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반대로 핵력이 지금보다 조금 약했다면 태양이 타오르지 못하여 생명체가 있다 해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중력이 지금보다 조금 더 강했다면 우주는 수십억년 전에 작은 점으로 똘똘 뭉쳐서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고(Big crunch), 반대로 조금 약했다면 우주는 엄청난 속도로 팽창하여 꽁꽁 얼어붙었을 것이다(Big freeze).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들은 먼 옛날 머난먼 별의 수소 원자가 핵융합반응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인데, 이 핵융합반응은 극도로 복잡한 과정이어서 언제든지 잘못될 수 있고, 만일 그랬다면 우리 몸을 이루는 무거운 원자들, DNA와 생명체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생명이 탄생하고 번성하려면 이 밖에도 여러 변수가 세밀하게 세팅되어 있어야 하는 기적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생명은 값진 존재라는 것이다. 이 과정이 모두 우연이었을까? 인류 원리는 약원리와 강원리로 나뉘는데, 약원리는 생명체의 존재 자체가 우주의 물리적 변수들을 정교하게 결정했다는 것이고, 강원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태초에 창조주가 생명체에게 유리한 쪽으로 우주를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출처)
<마음의 미래> 미치오 카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