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글쓰기 공부하기
코로나19 사태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블로그도 시작하고, <과학문화인력 양성과정>의 <과학저술가>분야에 합격하면서, 요즘은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글쓰기를 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 논술 시험을 치루기 위해 글쓰기를 학교와 학원에서 배우기도 했지만, 그래도 훨씬 비중이 컸던 수학, 영어 공부에 집중했지, 논술에는 큰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지 않았었다. 그렇다고 내가 문학 작품에 심취해서 독서를 많이 하거나 혼자서 습작을 했던 것도 아니고, 글쓰기와 관련된 과제가 주어지면 머리 속이 텅비고 너무 하기 싫어서 딴짓만 하기 일쑤였다. 꼭 지금의 첫째 아이 처럼 말이다.
그러다가 전공의 때 조금씩 논문 초록을 써보면서 어떻게 논리적으로 글을 쓸 것인가 살짝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몇년 전 부터는 의사회에서 여러 성명서와 의견서를 써보면서 '글에도 힘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차차 들기 시작했다. 모순된 의료계의 현실에서 각자는 자기가 처한 상황에 따라 소모적인 감정 싸움과 말을 많이 하게 되는데,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한번 정리해서 상대에게 전달하면, 상대방도 자기 생각을 한번 더 정제해서 나에게 돌려주는 것을 수차례 경험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가 첨예한 갈등 속에 분열되어 있더라도, 이 또한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가는 과정이라고 믿고 있다. 좀 더 성숙하고 발전된 의견 제시를 위해서는 각자가 많이 답답하고 긴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글로써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하고 남에게 표현해주는 수고를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지난 주말 강의를 맡았던 강사님은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앤 클리닉(CCC)>의 백승권 대표님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역임하면서 각종 정책보고서와 정책기사 작성 및 첨삭을 담당했던, 청와대 보고서 매뉴얼의 완성자로 알려진 분이다. 이후에도 백대표님은 유수의 대기업과 정부, 지자체, 학교에서 매년 200여회의 글쓰기 작성법 강연을 하고 있으며, 작년에는 <보고서의 법칙>이란 책을 출간해서 많은 단체에서 '소통을 위한 보고서 작성의 편리한 설명서'로 쓰이고 있다. 강의는 "과학 저술에 있어서 핵심을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글의 구조 만들기"를 목표로 여러 예시와 실습을 통해 알려주는 내용이었는데, 이를 통해 내가 그동안 잘못 생각했던 부분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고, 모호했던 부분이 좀 더 명확해질 수 있었다.
글쓰기 수업을 듣고 우리 아들 생각이 났다. 이 녀석은 '일기 쓰기', '독서록 쓰기' 같은 글쓰기 숙제를 제일 싫어했었는데, 어떻게 쓰면 구색을 맞춰가면서 잘 쓰고, 빨리 숙제 끝내고 놀 수 있는지 방법을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난 주 <과학저술가>과정 강의 때 들었던 내용을 같이 공부해보자고 했다. 한번에 다하면 너무 힘드니까 짧게 짧게 나눠서..
아빠의 글쓰기 공부 제안에 초등학교 6학년인 첫째는 마지 못해 따라와주었다. 먼저, 스티브 잡스의 유명한 '스탠포드 졸업 축사'를 같이 읽어보고, 글의 구조를 파악하면서 스티브 잡스가 자기 생각을 알려주기 위해 어떤 표현을 썼는지 백대표님에게 들은 것들을 얘기해주었다. 자기도 조금씩 이해가 된다고 하길래, 내가 실습했던 것처럼 잡스의 졸업 축사를 직접 요약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좀 삐죽대다가 시간은 걸렸지만 요약문을 완성하긴 했다. 그리고 아들이 요약한 글을 같이 보면서 아빠 생각은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했더니, 수용하는 부분은 수용하고 자기는 이런 이유로 이렇게 요약했다고 하는 대답도 들을 수 있었다.
백대표님은 수업 말미에 글쓰기는 '머리로 하는 스포츠'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아들과 글쓰기로 같이 축구 공차기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도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들놈들과 글로써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살아가고 싶다. 좋은 강의로 소중한 깨달음을 주신 백승권 대표님께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드린다.